전 국민이 국민프로듀서가 되어 자신이 응원하는 멤버를 아이돌로 데뷔시키는 시대가 왔다. ‘Pick me Pick me’를 부르던 소녀들은 어느덧 1년차 가수가 됐고, ‘오늘 밤 주인공은 나야 나’라고 외치는 소년들은 현재 최고의 주가를 달리는 연예계 블루칩으로 승승장구 하고 있다. 아이돌뿐이 아니다. 힙합 서바이벌 ‘쇼미더머니’, 성악 오페라 서바이벌 ‘팬텀싱어’, 모델 서바이벌 ‘도전 슈퍼모델 코리아’, 음식 서바이벌 ‘마스터 쉐프 코리아’ 등 각 분야에서 서바이벌 오디션은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들에게 성공과 부를 안겨주곤 한다. 이러한 연유에서인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더 해지고 있다.

연극에도 서바이벌 오디션이 시도됐다. 지난 7월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된 앤드씨어터의 <창조경제 - 공공극장편>이 바로 그것이다. <창조경제 - 공공극장편>은 네 개의 팀(극단 불의 전차, 신야, 잣 프로젝트, 907)이 1800만원의 우승상금을 걸고, 13분이라는 제한된 시간동안 “나의 창조 활동이 나의 경제생활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문장을 화두로 하여 자신의 창작 결과물을 선보이고, 공연이 끝난 즉시 관객들의 투표를 통해 작품의 순위를 매기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그렇다면 연극 서바이벌 오디션은 여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들과 마찬가지로 참가자들에게 성공과 부를 안겨주었을까?

질문 1. 연극은 경쟁의 대상이 없는 것인가?

야심차게 시도된 연극 서바이벌 오디션은 참가자들에게 성공과 부를 안겨주지 않았다. 오히려 연극에 ‘경쟁’이라는 프레임을 입힌 것에 대해 갑론을박 말이 많았다. 예견된 결과였다. 나 또한 작품을 보면서 혼란스러웠다. 두 번의 관극 과정을 거치는 동안 여러 의문들이 생겼고, 스스로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생각이 바뀌기도 했다. 첫 번째 관극 때는 ‘경쟁에 동의하지 않는다.’에 표를 던졌다. ‘작품과 작품을 비교하여 평가하고 순위를 매기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평가자의 취향과 주관적인 관점에 의존하여 예술을 제대로 가치평가할 수 있을까?’ ‘예술가의 고유한 예술성을 한 번의 관극만으로 가타부타하며 평가할 수 있을까?’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다. 더불어 연극에 대한 열정과 무대를 향한 절박함이 담긴 네 팀의 무대를 지켜보며, 무대 위 배우들이 울고 웃을 때마다 애잔하고 짠한 마음까지 드니 감히 이들의 작품을 평가하고 한 팀을 선택하여 투표할 수 없었다.

그러나 두 번째 관극 때는 생각이 달라졌다. 연극인들의 처지에 공감하며 감상적으로 무대를 바라봤던 첫 번째 관극 때와는 달리 한 발짝 거리를 두고 무대를 바라보니 이러한 상황은 비단 연극뿐 아니라 삶의 영역 곳곳에서 이미 숱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으며, 항상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리며 경쟁하는 삶에 익숙해져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왜 연극은 자신을 경쟁 구도에 넣으려는 시도조차 그 정당성을 의심받고, 자신이 지지하는 공연 팀에게 투표하는 것마저 거듭 고민하게 만드는 것일까? 시장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공급과 소비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소비의 주체인 대중의 의견을 듣고, 대중과 함께 소통해야 시장이 활성화되는 것은 응당 당연한 일이다. 연극이 지원금에만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관객의 선택을 받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창조경제 - 공공극장편>이 내건 “나의 창조 활동이 나의 경제생활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문제 제기는 상당히 뒤늦은 물음이 아닐까 싶었다.

두 번의 관극 과정을 거치며 생각을 거듭할수록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공연을 다시금 떠올릴 때마다 생각은 계속 바뀌었고, 그 어떤 해답도 찾지 못했다. 이는 창작자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작품 곳곳에는 앤드씨어터가 이 작업을 하면서 느꼈던 수많은 고민의 흔적들이 묻어있었고, 결국 그 어떤 것도 결론을 내지 못하고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는 고백까지 담겨있었다.

질문 2. 문제 제기 , 무대는 무엇을 보여줬나?

그렇다면 서바이벌에 참가한 네 팀은 어떠한 물음과 답변들을 내 놓았을까? 극단 불의전차는 그 동안 공연할 기회를 얻지 못해 책장 안에 묵혀두었던 작품들 중에서 몇몇 장면들을 재구성하여 하나의 작품을 만들었다. 끊임없이 창작 활동을 하고 있지만 창작 활동이 결과물로써 무대에 올라가기 힘든 현실을 꼬집으며, 동시에 무대에 대한 열망과 간절함을 표출했다.

신야는 ‘연극으로 밥 먹기’라는 슬로건 아래 실제 양양에서 진행했던 ‘돌고 돌아 양양판 버스킹’의 경험을 무대에 녹여냈다. 신야는 스스로 연극 자판기가 되기를 자청했다. 극장 공간을 벗어나 실제 거리로 나서 관객들을 찾아다니는 이동형 연극을 하며, 거리에서 마주한 관객들의 반응을 바탕으로 그들만의 레파토리를 창조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연극’이 생계의 수단이 될 수 있을지 실험했다. 만족스러울 정도의 수입은 내지 못했지만, 그들은 또 다시 양양을 찾으리라 다짐했다.

잣 프로젝트는 앤드씨어터가 제시한 문제 제기에 대하여 연쇄적으로 드는 질문들을 끊임없이 꺼내 놓았다.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었으며, 계속되는 질문들과 함께 배우들의 몸짓만이 무대를 가득 채웠다. 잣 프로젝트가 던진 질문은 공연에 참가한 네 팀, 앤드씨어터, 관객 모두가 한 번쯤은 생각해봤을 질문들이었다. 그 해답은 어디에도 없었다. 각자가 찾아야 할 숙제로 남겨졌을 뿐이다.

907은 짧은 우화를 선보였다. 무대에 등장한 두 여자는 사과 심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사과가 자라기 위해서는 나무가 있어야 하고, 그 전에 씨앗이 심어져야한다. 씨앗이 심어질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고, 나무가 자랄 수 있을 만큼의 시간과 정성이 담보되어야 비로소 사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는 그만큼의 시간을 주지 않고 단기간에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라 종용한다. 907은 “씨앗이 나무로 자라는 것을 보려면 10년은 걸린다. 그리고 나에게는 단 10분이 주어져 있다.”라는 대사를 통해 <창조경제 - 공공극장편> 작업을 비롯하여 경쟁을 부추기는 한국의 무한 경쟁사회를 비판했다.

앤드씨어터가 던진 질문에 답한 네 팀의 무대를 통해 현재 연극인들의 위치가 보였다. 끊임없이 창작 활동을 하고 있지만, 결과물을 선보일 극장이 없다. 극장 대신 찾은 거리에서의 공연은 이렇다 할 수입을 내지 못한다. 기댈 곳은 지원사업뿐이나 지원사업에 선정되기 위해서는 기획안 몇 줄과 10여분의 짧은 브리핑 시간 안에 내 작품의 가치를 증명해내야만 한다. 예술과 연극, 자본과 경쟁 그 사이에 놓인 수많은 질문들을 계속 되뇌지만 그 어디에도 답은 없다. 그럼에도 연극이 하고 싶어 이 무대에 서있다. 이들은 이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

질문 3. 무한 경쟁사회 속 ‘연극-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창조경제 - 공공극장편>은 연극의 방향성과 생존에 대하여 고민한다. 대중의 기호에 알맞은 작품을 만들어 수익을 낼 것인가, 시장 논리와 타협하지 않고 독자적인 예술성을 계속 밀고 나갈 것인가. 경쟁을 통해 선택 받는 것이 익숙하고 당연시 되는 사회에서 연극은 자신의 위치를 어디에 설정하고, 어떻게 생존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한다.

<창조경제 - 공공극장편>의 무대는 연극인뿐 아니라 이 사회를 살아가는 ‘나’와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100여 분의 공연이 아닌 몇 줄의 기획안으로 작품이 평가되는 것처럼 현대인들 역시 수 십 년의 삶의 경험이 아닌 단 몇 줄의 자기소개서로 자신의 가치를 평가받는다. <창조경제 - 공공극장편>의 무대가 13분의 시간을 제공했다면, 실제 현실에서 주어진 면접 시간은 10분도 채 되지 않는다. 연극이 보여주는 현실은 비단 연극만의 문제가 아니다. 연극은 ‘무한 경쟁사회 속에서 당연시되는 경쟁이 과연 옳은 것인가?’를 질문한다. 그리고 관객들은 연극의 질문에 갑론을박하며 함께 논쟁한다. 연극이기에 가능한 풍경이 아닐까?

(사진 제공 – 남산예술센터, 김솔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