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평할 있을까?

그 기억은 아직까지도 박혀있다. 비평의 역할을 공감하지도 못했고, 표현하는 방법도 알 수 없었다. 지금도 비평 웹진의 일원으로 화면을 마주하고 있지만 벌써 D-day +26시간째 한 문단도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내 머릿속에 떠도는 건 그 날의 기억뿐이다.

무서운 교수님이셨다. 직접적으로 무서운 모습을 보인 적이 없지만, 나에게는 너무 위대하고 큰 분이셔서 그 분 앞에서 한 번도 편안해 본 적이 없었다. 비평에 있어서는 그는 신계였고, 그를 둘러싼 무수한 무용담들이 가득했다. 한번은 이런 말도 들었는데, 내 윗대의 선배 중 한 명은 수업시간에 “졸렬하다”란 독설을 듣고 충격을 받아 학교를 관뒀다고 하더라. 그런 분 앞에서 비평의 사전적 의미조차 헷갈리는 학생이 비평 과제를 매번 해내야 한다는 것은 부담을 넘어 고통이었다. 나의 비평은 궤변을 꾸역꾸역 때려 박은 글이었고, 그 글을 같이 보는 동기들은 하나 같이 연극계에서 한 가닥씩 하는 친구들이었다. 나조차도 내 글을 읽으면서 빨개지는 얼굴을 숨길 수 없었고, 교실에는 동기들이 뱉은 위로의 신음, 그리고 교수님의 무자비한 침묵이 가득했다. 가장 잔인한 것은 그 묵인의 시간이 배려였다는 것이다. 이 글이 비평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기에, 그들은 나를 배려한답시고 어떤 코멘트도 던지지 않았다. 나는 비평을 할 줄 모른다. 이것을 인정하는데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교수님을 마주했다. 큰 용기를 가지고, 누구나 알고 있지만 선뜻 꺼내지 못한 말을 꺼냈다.

“교수님, 저는 비평을 할 사람이 못됩니다.”

“아니, 너는 비평을 할 성격이 못 돼.”

아, 내가 들은 최고의, 촌철 같고 따뜻한 비평이었다.

나는 왜 비평을 할 수 없는 성격인가? 나는 그다지 냉철하지 못하고 논리적이지 않다. 이성적이지 않고 객관적이지 않다. 연극에 대한 지식도 자신할 수 없고, 분석적이지 않다. 한편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다. 모든 공연이 무대에 올라가기까지의 열정과 노력을 사랑한다. 그렇기에 나는 모든 공연에서 나름의 매력을 느끼고, 관객이라는 위치에서 그들과 관계를 맺는 것에 만족한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제왕적 위치에서 무대예술을 평하고, 재단하는 일을 할 수 없었다. 이것이 비평의 본질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공연을 잘 읽고, 모든 지식을 총동원하여 그 의미를 해석하는 권위적인 비평을 배워 온 나는 그런 비평이 부담스럽고 어려웠다. 나의 성격은 비평을 할 만한 성격이 못된다. 그래서 이 기억은 비평하면 떠오르는 추억이다. 그날 그 교수님 앞에서, 난 비평과의 단절을 통해 나 스스로를 비평했다. 그리고 비평으로부터 해방됐다.

종묘제례악, 비평할 있을까?

나 스스로는 기득권의 비평을 포기했지만, 비평의 필요성은 믿는다. 특히 전통공연예술은 비평이 가장 척박하면서도 가장 필요한 장르이다. 왜냐하면 동시대 관객과의 거리가 너무 멀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무형문화재에 선정된 전통공연 장르는 더욱 그러하다. 국가무형문화재 제도는 고유한 전통문화를 보전·계승하기 위해 이상적인 정책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전통공연이 동시대와 소통하지 못해 스스로 상아탑에 갇힌 형국이 되어버렸다. 제도의 보호 아래 권력을 잡은 기득권과 도제식 교육방식이 너무 뿌리 깊이 묻어있어 쉽게 바뀌려고 하지 않는다.

매년 5월 첫째 주 일요일에는 종묘에서 종묘제례 봉행이 이루어진다. 올해 5월 종묘대제 시, 마침 나는 한국문화재재단의 궁중문화축전에서 일하게 되었고, 종묘대제를 담당했다. 100미터 맞배지붕이 주는 위압감은 조선의 신전의 웅장함을 강조하고, 109미터의 너른 월대 위에 도열한 문무제관, 악공, 무공들의 엄숙한 의례는 역시 전통공연예술의 진수였다. 나 또한 자부심이 넘쳤다. 이런 위대한 공연에서 조금이라도 일조할 수 있는 내가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해서 훌륭한 의례 예술을 만들어보고자 했나 보다.

“선생님, 리허설 안 하세요?”

“됐어, 눈 감고도 하는 건데, 무슨.”

종묘대제봉행위원회 관계자들은 늘 해오던 일이라 그런지 일에 대한 매너리즘과 약식 밖에는 남은 것이 없어보였다. 주최인 종묘대제봉행위원회의 종묘제례보존회와 종묘제례악보존회는 종묘대체의 처음이자 끝이다. 제향의 순서부터 제관의 의복, 도열, 대사, 음악, 춤 모든 것에 대한 살아있는 교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리허설은커녕 자신을 따라오라는 제왕적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종묘대제의 불통은 비단 현장에서만 있는 일은 아니다. 종묘대제에 대한 비평이나 리뷰는 기대하지도 않지만, 그에 대한 정보는 모두 한국문화재재단에서 근 3년 동안 비슷하게 만들어 배포한 보도 자료에 의존하고 있다. 그 외의 정보는 학자의 연구 아닌 이상에야 현재 종묘대제에 대한 논의를 올리는 사람이 없다. 종묘제례악은 예술인가, 아닌가? 조선시대 당시의 예술성을 지키기 위해 동시대 관객을 외면 한다면 굳이 동시대 관객이 필요한가?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과의 대화가 절실하다.

한편, 종묘제례악은 2015년 9월 18일, 19일 2일 동안 한불 상호교류의 해 130주년을 맞아 프랑스에 초청되어 공연한 적이 있다. 파리 국립샤이오극장(Théàtre Nationalde Chaillot) 공연 당시, 관계자 130여 명으로 해외 공연 최대 규모를 찍었고, 종묘제례악 전장을 최초로 해외에서 연주하여 의미를 더했다고 한다. 당시 김해숙 국립국악원 원장은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제례 음악이기는 하지만 무대 예술로서 이 극장에 띄우는 것”이라며 무대 예술로서의 종묘제례악을 언급했고, 실제로 극장 환경에 맞춘 일무의 도형 변화, 고증을 반영한 무대 의상 등의 변화를 적용했다. 이 공연은 전석 매진일 정도로 현지 반응이 좋았다고 하나, 이 공연에 대한 기사는 국립국악원 보도 자료를 기반으로 한 홍보 기사 뿐, 그외 비평은커녕 리뷰도 확인하기 어려웠다.

종묘제례악을 비평할 수 있을까? 동시대 관객 중에 전통공연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 매우 많다. 종묘제례악도 비평을 요청하지 않고, 비평가들도 종묘제례악을 찾지 않는다. 전통공연 스스로 관객이 아닌 기득권 형성에 몰두하면서 동시대 관객과 거리를 만든 것이다. 이 단절로 인해 전통공연예술은 예술성을 잃고 말 것이다. 동시대 관객들이 발견하지 못하는 예술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종묘제례악은 공연예술성을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동시대와 소통해야 한다.

(사진 제공 – Pixbay, 한국문화재재단, KORE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