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밀양이나 갈까?”

살다보면 지치고 힘들 때, 별 일이 없는데도 서러울 때, 요즘처럼 가을바람이 덧없이 살랑일 때,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허무할 때, 생활의 활력이 필요할 때,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은 나였던 때가 그리울 때 한숨처럼 떠오르는 곳, 밀양. 사촌 같은 동기 오빠가 구박서린 마중을 오고, 언니 같은 동기가 밥이며 잠자리 챙겨주고, 떠날 때면 “언제든 오니라”라며 손 흔들어 주시는 선생님들이 있는 곳, 밀양연극촌. 나의 고향. 나는 연희단거리패 13기 단원이다.

10년 전,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 개막작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을 처음 만난 것도 그 때, 2006년 여름이었다.

“선배님, 연습 시간입니다. 연습실로 오세요~”

스무 살 신입단원이었던 나는 감사하게도, “말이 좋아 조연출”이란 이름으로 프리프로덕션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은 숙소 복도 끝에서 끝을 돌며 각 방마다 선배들을 불러 모으기, 대본이며 희곡분석 자료 나눠드리기, 연습일지 기록, 커피 타오기, 워크샵 일정 공지, 각종 워크샵 선생님들 모시기. 브레히트, 억척어멈, 연희단거리패가 뭔지도 모른 채, 그저 이쌤이 브레히트와 희곡을 설명해주면 멋있었고, 선배들이 각 잡고 대본을 읽으면 감동했고, 대본 분석을 하며 우스갯소리 하면 좋다고 웃었다. “전쟁 중에도 평화는 있는 법” 그 시간은 평화의 순간이었다.

공식적으로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의 초연은 2006년 게릴라극장이지만, 그 전에 2006년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 개막작으로 먼저 올랐다. 전쟁이었다. 전국구 축제를 앞두고 학교운동장을 뛰어다니다가도, 연습호출이 있으면 새벽까지 리허설을 했다. 무대 세트가 필요하면 연장을 들고 우루루 몰려가고, 의상이나 소품이 필요하면 각 극장 소품실을 뒤지며 구해왔다. 그렇게 올라간 공연 첫 장면. 한 겨울, 두 군인이 대화를 나눈다. 한 여름의 무대 성벽무대에는 입김이 서렸고, 관객들은 한순간에 한국동란에 섰다. 그때처럼 브레히트가 뜨거웠던 적이 없었다. 당시 연희단거리패의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은 연극계, 브레히트학회, 독문학계의 관심을 받았고, 제43회 동아연극상 올해의 연극 best 7 안에 들면서, 작품상, 연출상, 연기상을 수상했다.

10년 만에,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 폐막작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

그리고 올해, 10년 만에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 폐막작으로 다시 부활했다. 10년의 시간, 개막과 폐막. 지난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 폐막식에서 만난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은 걱정됐다. 브레히트도 한국적 정서도 어느 부분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무대. 준비 덜 된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방방 떠 있었고, 이야기는 조각조각 토막 나 있었고, 어수선한 무대전환, 흥분한 배우들, 극의 중심이자 전부인 억척어멈마저 뭉그러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공연. 내부사정이 보였다. 축제 치르랴, 공연 준비하랴, 잠시간 식사시간 쪼개며 대사를 외우고, 무대를 만들어도 부족했을 시간들. 전쟁이었다. 하지만 연희단거리패 단원들은 억척스럽게 무대에 버티고 서 있었다.

다시 돌아온, 창작산실 in SPAF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

치열하고 억척스럽다. 9월 21일부터 24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 선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은 그야말로 연희단거리패 그 자체였다.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 후 약 한 달 반의 시간동안 연희단거리패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을지 눈에 보였다. 2006년 그때와 같았다. 첫 장면, 한 겨울, 두 군인이 대화를 나눈다. 무대의 공기가 서늘해지더니 순식간에 한국동란, 내 평생 경험해본 적 없는 그 시공간에 섰다. 그리고 억척어멈의 수레를 따라다니고 억척어멈의 술을 받아 마시며 전장을 누볐다. 아들의 목숨 값을 흥정하는 억척어멈을 보며 가슴을 쳤고, 억척어멈을 대신해 큰아들을 떠나보냈다. 누굴 위한 전쟁인가 화가 났고, 전쟁의 잔인함, 전쟁 속 태세전환, 전쟁으로 먹고 사는 억척어멈의 아이러니, 살려고 바둥대는 억척어멈의 억척스러움을 공감하고 토닥였다. 전쟁으로 자식을 잃었을 때 그 가슴을 할퀴는 그 곡소리, 우리는 같이 울었다. 우리 본능에 내재된 원초적인 울음소리에 관객들은 철저히 억척어멈과 동화된다. 연희단거리패의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이 유독(唯獨)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우리식의 표현방식과 정서적 동화(同化).

삶과 연극의 동기화, 연희단거리패의 작업 방식

흔히들 브레히트의 작품을 논할 때 서사극적 기법이라든지, 이화(異化)효과, 소외(疏外)효과 등 어려운 말을 써가며 “감정적 교류를 방지하고, 관객이 무대의 사건에 대해 비판하는 태도를 갖게 하는…” 훈화식의 평을 한다. 그리고 브레히트의 작품을 옮긴 모든 한국연극들이 그러한 기대치 안에서 “평”되고 있다.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은 그 반대로 간다. “서사극적 방법론이 그리 피하라고 일렀던 몰입과 흡인력을 내면서 사유와 비판의 권유를 홀딱 잊을 만큼 정서적으로 객석을 압박해 온다(장성희)” 이윤택 연출은 브레히트의 이화(異化)효과를 한국식으로 해석했다. 즉, “서양 사람들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이화지만, 한국 사람들은 매우 슬프면 곡을 한다.”고 말이다. 브레히트의 이화(異化)효과를 한국식으로 치환했는지 그런 건 모르겠지만, 연희단거리패의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이 가진 힘은 관객 동화(同化)에 있다는 게 확실하다.

연희단거리패의 관객 동화는 연극과 삶의 경계가 없는 그들의 생활방식, 연극적인 삶을 향한 공동체연대에서 나온다. 소시민의 삶을 무대로 옮기면서 연극을 시작한 수장 이윤택(<시민K>, <산씻김>), 연극의 생활화를 실천하는 연극공동체 밀양연극촌, 우리 소리, 몸짓으로 우리극을 실천하는 연희단거리패의 연기술은 삶과 연극의 경계를 지우는 연극공동체의 삶을 표방한다. 그 실천은 더욱 삶과 맞닿아 있다. 소시민의 삶을 무대화하고(<시민K>, <산씻김>), 시민들이 있는 광장에 나가고(2/6~9, 광장극장 블랙텐트 <씻금>), 본연의 소리와 움직임으로 일상을 그리고(2017 30스튜디오 굿과 연극 시리즈), 지역발전을 위해 날마다 축제를 벌이고(<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 윤택한 삶을 위해 장사를 한다(스튜디오 30 ‘날마다 축제’ 카페). 이렇게 삶에 억척스러울 수가 있을까. 연희단거리패는 무대에서나 무대 밖에서나 삶을 소외시키지 않는다. 함께 살아간다.

내가 경험한 밀양연극촌의 하루는 연극과 함께 시작해서 연극적으로 끝났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연극하고, 이야기를 만들고 살아가는 곳이다. 깨어있는 꼰대 연출, 인품은 좋은데 예민한 여배우, 입 걸은 츤데레 선생님들, 허세 넘치는 연극지성인들,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그들의 삶을 나누고, 동화되고 함께 한다. 삶과 연극이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는 연희단거리패의 생활이 바로 연희단거리패 연극의 동력이다. 삶과 연극의 동기화를 통해 연희단거리패의 억척어멈은 격렬하게 삶을 갈구하는 진짜 억척어멈이 됐다. 관객은 억척어멈과의 동화(同化)를 통해 우리는 놓쳤던 인간성에 대해 성찰하고, 사회에 대한 본연의 자세를 탐구한다. 억척스런 연희단거리패는 그렇게 브레히트와 맞닿는다.

(사진 제공 – 극단 연희단거리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