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아담. 날 기억하나요? 지난 8월 에든버러 트라버스 극장(Traverse Theatre)에서 우린 만난 적이 있지요. 나는 당신이 직접 출연한, 당신의 이야기로 만든, 당신의 이름을 딴 공연, <아담>(Adam, 프란시스 포엣 Frances Poet 작, 코라 비젯 Cora Bissett 연출)을 본 관객이랍니다. 맨 앞줄에 앉아 공연 중엔 흐뭇하게 웃다가, 끝나고선 눈물을 훔치며 커튼콜에 기립해 힘껏 손뼉 쳤던 키 작은 동양인인데, 기억하시려나요.

당신은 절 몰라도 저는 당신을 또렷이 기억해요. 가늘면서도 옹골찬 당신의 목소리, 당신이 자랑스러워하던 ‘남자다운’ 턱수염, ‘아담’이라는 당신의 새 이름, 당신이 들려준 지난하면서도 아름다운 당신 인생을 저는 기억한답니다.

제가 이렇게 당신에게 닿지도 않을, 설령 당신에게 전달된다 하더라도 언어가 달라 읽지 못할 편지를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신의 특별한 인생과 아름다운 공연을 이곳 사람들에게라도 나누고 싶어서 그런가 봅니다. 당신을 만났을 때 그 설렘이 아직도 가시지 않아서요.

아담과 아담의 싸움, 과거와 현재의 갈등, 나와 나의 만남

이집트 전통 음악이 음산하게 깔리고 조명이 들어오면서 공연이 시작됐죠. 한 여성(으로 보이는 사람)이 칼을 들고 있었는데, 사정은 알 수 없었지만 매우 긴박한 상황으로 보였어요. 인물의 긴장과 음악이 고조되면서 손에 들려있던 칼은 그(녀)의 가슴팍을 겨냥하더군요. 한쪽 가슴을 내어놓고 그것을 도려내려는 순간 암전이 되고, 본격적으로 극은 시작했죠.

앞서 식칼을 들었던 인물은 이집트 아담(Egyptian Adam, 네쉴라 카플란 Neshla Caplan 분)이었어요. <Adam>은 이집트 아담과 글래스고 아담(Glasgow Adam, 아담 카쉬미리 Adam Kashmiry 분)이 주인공인 2인극이었죠. 이집트 아담은 글래스고 아담의 과거 즉, 여성(으로 규정 받은 사람)이었어요. 글래스고 아담은 ‘트랜스 남성(Trans-man)’이었구요.

당신이 맡아 연기한 글래스고 아담은 두 가지를 전환(trans)했는데, 하나는 성 정체성이고 다른 하나는 국적이었죠. 우선 성 정체성에 관해 얘기해보지요. 당신은 여성으로 태어났(다고 규정 받았)지만, 남성이 되고 싶은 욕망에 남성-되기를 끊임없이 시도했어요. 결국 트랜스 남성(FTM, Female To Male)이 되었지요. 앞서 이집트 아담이 가슴팍에 칼을 들이댄 첫 장면은 ‘정체성’과 ‘몸’을 둘러싼 갈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었죠.

성별을 바꾸는 것도 지난한 투쟁과 고통의 연속이었건만, 당신에겐 하나의 관문이 더 남았어요. 국적이 당신에겐 큰 위협이었지요. 당신이 태어난 이집트에서 트랜스 성별로 살기란 불가능했으니까요. 그래서 당신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로 이주를 시도했던 것이고요. 그 여정 속엔 남성이 되기 위한 의학적 시도뿐만 아니라 ‘난민’으로 살아야 했던 지난날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죠. 성별이든 국적이든, 무참히 그어진 경계를 넘는다는 것은 목숨을 건 투쟁이라는 것을 확인했어요.

당신의 인생 여정이 펼쳐진 무대는 알고 보니 당신의 ‘뇌’ 즉, 머릿속이더군요. 당신의 자아 속에서 벌어지는 이집트 아담과 글래스고 아담의 대결, 이는 곧 여성성과 남성성의 갈등이자 고통과 욕망의 대립을 상징했지요. 당신은 ‘이집트’에 태어나 ‘여성’으로 규정 받으며 살면서 ‘고통’ 받았어요. 그런 당신은 성 정체성으로 사람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 ‘글래스고’로 이주해 ‘남성’으로 살기를 ‘욕망’했고요. 이런 두 자아의 대립이 벌어지는 무대는 참신한 설정과 더불어 다양한 의미가 교차하는 지점을 효과적으로 보여주었지요.

이 무대가 당신의 첫 프로 무대였다는 것에 놀랐어요. ‘자기 서사’를 오롯이 ‘자기 몸’으로 무대에서 전하는 것이 그 어떤 고전 텍스트나 숙련된 배우의 힘보다 강력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어요. 물론, 당신의 이야기를 훌륭한 드라마로 만들어준 작가 프란시스 포엣의 공도 컸지만요.

언어를 뒤집고 성서를 전복하다

아담, 당신은 언어에 상당히 민감했지요. 언어는 당신의 존재 자체를 흔드는 위협인 동시에 삶의 이유를 찾는 무기였으니까요.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할 언어가 없다는 사실은 제삼자인 제가 보아도 참 슬펐답니다. 그 때문에 당신은 기존의 언어를 새로이 해석하려 노력했고, 존재하지 않는 언어를 창조하는 일에 몰두했지요.

극 초반부에 글래스고 아담은 영어가 아랍어보다 뛰어나다고 주장하는데, 영어에는 하나의 단어에 이중(double) 또는 다중(multi)의 의미를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해요. 예를 들어, 영어에 ‘sanction’이란 단어에는 ‘인정하다(to permit)’와 ‘처벌하다(to penalise)’라는 뜻이 함께 들어 있어요. 서로 다른, 그것도 반대 의미가 한 단어에 담겨있죠. 이에 이집트 아담은 아랍어에도 이 같은 단어가 있다고 반박하면서 두 아담은 언어의 문제로 대립했지요.

연극 마지막 대사에도 나오듯, ‘투명하다'(transparent)는 말에는 ‘보이지 않는'(invisible)다는 의미도 있지만, ‘명백하다'(obvious)는 뜻도 되지요. 저는 이 단어가 당신을 참 닮아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언어가 항상 모든 존재를 포용하는 것은 아니지요. 그래서 당신의 정체성과 당신에게 주어진 언어는 자주 충돌했잖아요. 정체성과 일치하지 않는 언어가 주는 불편함은 당신에게 줄곧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지요.

남성의 영혼이 여자의 몸에 갇힐 있는가?”

(Is it possible for the soul of a man to be trapped in the body of a woman?)

당신은 어릴 적부터 남성의 영혼을 가진 자신이 여자의 몸에 갇혔다고 믿었죠. 트랜스 남성으로 다시 태어난 당신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당당히 외쳤어요. “그렇다(The answer is yes)”고 말이에요.

이렇게 언어에 민감하게 사유하는 과정은 성서에서 아담의 최초 업무가 ‘이름 짓기’였음을 상기하게 했어요. 언어를 통해 자연을 다스리고 적응하는 것이 성서에 나온 아담의 일이었죠. 우리는 언어로써 생각하며, 언어를 통해 정체성을 만드니까요. 이런 언어의 위력이 때로는 권력의 도구가 되어 소수자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쓰인다는 점을 당신은 어린 시절부터 몸소 겪었지요.

언어의 문제를 드러내고 재구성하기 위해 연극에서 택한 테마는 바로 성서였지요. 성서를 비틀어 자신의 역사를 새로 쓴 점이 참 신선했어요. 그것도 보수 기독교에서 퀴어 혐오를 정당화하는 구절로 가장 많이 이용되는 ‘창조 신화’를 차용해 전유했다는 점이 기발했지요. ‘신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했으므로, 이분법적 성별 구조가 자연적인 신의 섭리’라며 기독교에선 성 소수자의 존재를 부정하잖아요. 보수 기독교의 편협하고 근본주의적인 해석을 당신은 재치 있게 뒤집었지요. 그러면서도 기독교의 본질인 존재와 인간, 관계와 사랑에 대한 새로운 창조 신화를 당신의 ‘말’과 ‘몸’으로 직접 만들어냈지요.

마지막 장면엔 ‘아담 세계 합창단(Adam World Choir)’를 결성한 120여 명의 트랜스들이 영상에 등장하며 당신을 위한 노래를 합창하더군요. 그들은 당신의 여정을 축복하고 연대했지요. 축복과 감동이 교차하며 객석에선 기립 박수가 튀어나왔어요. 전 세계 각지의 ‘아담들’이 진정으로 ‘한 몸’을 이룸으로써 공연을 완성한 셈이었죠.

그야말로 창조 신화를 혁명적으로 뒤집어 읽은 뒤, 엎어진 신화의 꼭대기에 무지개 깃발을 꽂는 순간이었어요. 조물주가 흙을 빚어 인간을 만들었다면, 아담, 당신은 인간이 묶어둔 이분법적 성별 구조에서 쫓겨난 존재를 빚어 새로운 인간을 창조해냈으니까요.

See you in heaven!

아담, 글래스고에 사는 당신은 아마도 이 편지를 읽지 못하겠지요. 그렇지만 괜찮아요. 당신과 같은 수많은 위대한 존재들이 이곳 한국에도 살고 있으니까요. 그들도 아담처럼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랍니다. 그들 중 누군가가 이 편지를 읽게 된다면, 아담의 이야기에 즐거워하고 기뻐하면 좋겠어요.

하지만, 아담! 여기 한국은 퀴어들이 살기엔 너무나도 각박한 땅이에요. 당신이 살던 이집트처럼 말이죠. 이분법적 성별 구조를 당연하게 여기는 우리 사회는 퀴어들을 울타리 밖으로 몰아내어 혐오와 차별의 대상으로 만들어요. 심지어 한 손엔 성경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퀴어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자행하는 사람들도 있답니다. 정말 무서운 곳이죠.

아담! 저는 여기 한국이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에이섹슈얼, 당신과 같은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모든 퀴어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사랑하며 사는 곳이 되면 좋겠어요. 그런 곳이야말로 신이 창조한 ‘에덴동산’이자, 성서에서 약속한 사랑 가득한 ‘천국’ 아닐까요? 아담, 우리 그곳에서 꼭 다시 만나요. 당신이 만든 천국에서, 당신이 새롭게 태어난 에덴동산에서.

God bless you!

(사진 제공- Traverse Theatre, credit for the images is David Monteith-Hod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