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극과 비상업극

: 주변인에게 웹진을 보여줬는데, “여기는 상업극 안 다루나봐?”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 상업극과 비상업극의 기준이 뭔가요? 상업극과 비상업극이라는 표현 자체도 저마다 생각하는 기준이 다르고, 그 표현도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이 둘을 나눌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도 있고요.

: 일단 상업극과 비상업극이라는 단어 자체에 ‘수익성을 내느냐, 못내느냐’가 전제되어 있는 것 같아요. 티켓 수익으로 이익을 내면 상업극, 그렇지 못하면 비상업극. 또 연극인들 내부에서는 ‘예술성이 있느냐, 없느냐’도 상업극, 비상업극의 기준이 되는 것 같기도 해요.

: 경험적으로 기준을 설정하자면, 객석에 지인 관객이 몇 퍼센트냐에 따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지인 관객이 많으면 연극인들의 연극. 모르는 사람이 많으면 제작극장이거나 상업극. 상업극과 비상업극을 나누는 게 너무 하나의 기준으로 연극을 평가해서 모순을 많이 낳는 것 같아요.

: 돈을 벌면 상업극 아닌가요? 저는 대학로에 있는 게 다 상업극이라고 생각했어요. 솔직히 티켓값 내야 하는 것은 다 상업극 아닌가요?

: 그런데 돈을 안 버는 연극은 없잖아요.

: 돈을 못 버는 연극은 있죠.

배고프고, 가난한 게 예술?

: 자본주의 사회에서 팔리는 것은 모두 다 상품으로 환원되는데, 그런 면에서 연극은 다 상업극이라고 생각해요.

: 제가 얼마 전까지 영국에 있다 왔는데, 영국에는 이런 표현 자체가 없는 것 같아요. 예술적이고 대중적으로 잘 만든 작품이 제작극장이나 권위 있는 극장에서 상연돼요. 그런 곳에서도 상업적인 풍경이 많아요. 프로그램 사고, 아이스크림, 와인, 맥주까지… 이건 그냥 시장이에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런 풍경을 한다고 하면 “우린 돈 벌려고 하는 거 아냐”라고 하는데, 실상 작품도 못 만들고, 돈도 못 버는 것 같아요. 돈도 잘 벌면서 예술적 성취도 얻어야 하는데, 이런 생각을 못하게 만드는 뭔가 구분선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이런 표현 자체를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저는 이게 근본적으로는 예술, 그 중에서도 특히 연극이 계속 산업화되는 것을 의식적로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예술이 산업의 반열에 올라야 시장이 커지고, 투자되는 프로덕션이 많아지고, 작품 퀄리티도 높아져요. 그러려면 산업의 기반이 닦여야 하는데, 그걸 거부하고 상업으로 들어가면 변절자가 되는 것처럼 취급되니까.

: 실제로 자본과 거리를 둬야 진정한 연극이라는 인식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우리는 돈을 위해 ‘연극’을 하는 게 아니야”라는 분위기가 있는 거죠. 제가 대학 때 연극을 전공했는데, 학부 때 그런 분위기를 배웠어요.

: 그럼 상업극은 비상업극보다 예술적이지 못한 연극이고, 비상업극은 상업적이지 않은 연극인가요? 제 생각에는 아마도 비상업극을 하는 연극인들에 의해 상업극과 비상업극이라는 구분이 생긴 게 아닐까 싶어요. 자신에게 예술적 가치에 따른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서.

: 저는 이게 우리 윗세대의 패배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해요. 상업극 욕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연극 만드는 사람을 못 봤어요. “돈 벌려고 연극하려는 게 아니야”라고 말하면서 연극으로 돈 못 버는 현실을 자기 위안하는데, 그게 당연한 게 아니잖아요. 연극하면서 돈 벌 수 있는 사회를 만들면 되는데, 그렇게 못하고 여태까지 이렇게 빌빌거리면서 사니까 “나는 ‘예술’ 하면서 살아”라고 자기 합리화하는 거죠.

: 요즘 젊은 창작자들도 그런 얘기를 해요? 돈을 벌면 예술을 배반하는 거라는 식으로? 제 주변 창작자들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굳이 돈을 우선에 두고, 좇지 않을 뿐이지 “돈을 벌면 예술을 배반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 제 지인들은 그런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해요. 대부분 가난한 극단에 속해 있는데, 본인이 알바를 하고 돈을 벌면서 그 돈을 극단에 다 들이 부어요. 그러면서 이런 게 예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배고프고, 가난한 게 예술’이라고.

: 그런 사람들이 말하는 예술은 예술을 좀먹는 예술이네요. 예전에 모 연출가를 인터뷰했을 때, 지금 연극인들에게는 “자기 증명을 위해 자기 착취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했거든요.

: 돈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 인정하기엔 자기들 자존심이 너무 상하니까. 그러면서 관객 탓은 엄청 하더라고요. 관객의 문제인 거야.

: 공연을 하고, 그에 대한 값어치를 얻었다는 것을 왜 건전하게 보지 못할까요?

: 왜 돈 얘기를 어려워하는지 모르겠어요.

: 이런 기준이 연극을 단일하게 평가하도록 만드는 것 같아요. 돈 안 벌면 작품을 못 만들어도 된다는 방패막이처럼. 작품 잘 만들면 돈도 벌 수 있어야 하지 않나요? 그래야 계속 하지.

: 연극 작업하면서, 그리고 연극 비평하면서 계속 이러고는 못 산다는 생각 들어요. 커피도 마시고, 옷도 사 입어야 되는데, 이렇게는 못 할 것 같아요.

: 누군가 연극하는 사람한테 “왜 너는 네가 좋아하는 거 하면서 돈까지 벌려고 하냐”라고 하더라고요.

: 그런 인식이 깔려 있는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이런 얘기하는 게 무슨 소용 있나요?

: 연극계를 바라보는 시선에 그런 인식이 특히 심각한 것 같아요. 쓸모 있는지, 없는지.

: 노숙자들이 듣는 말과 연극인들이 듣는 말의 맥락이 비슷해요. “놀고먹는 사람들한테 왜 우리가 지원금을 줘야하냐?” 그 사람들이 보기에 연극은 사회에 쓸모없어 보이는 거죠.

: 사람들이 궁핍할 때 가장 먼저 버리는 게 예술이에요. 그저 사치품으로만 생각하는 거죠.

: 그렇다면 연극은 어떻게 경쟁력을 챙겨야 할까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연극이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 연극인들을 위한 대출은행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 어떤 미친놈이 그런 걸 만들겠어요.

참을 수 없는 지원금의 가벼움

: 지원이 필요해요. 단체들이 자리 잡을 수 있게 하는 지원 자체가 현재로서는 정말 적어요. 심지어 지원 자격을 보면 일정 기간의 경력과 실적을 반드시 필요로 해요. 그러다보니 지원 받았던 단체가 또 받고, 이제 막 자라나는 단체들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거죠. 이게 현실이에요.

: 연극계가 활성화되려면 대통령 딸이 연극에 미쳐야 될 것 같아요. 그러지 않는 이상 힘들어 보여요. 현재 연극계는 산업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이번 지원 사업하면서 들은 얘기인데, 청년 예술가에게 최대 1500만원까지 지원해주는 것을 보고 누군가가 “젊은 애들한테 돈을 왜 이렇게 많이 주냐”라고 했다더라고요.

: 연극뿐 아니라 축제 지원사업에도 문제가 있어요. 지금 완전 제로그라운드라 미친 듯이 지원을 쏟아 부어도 부족한데, 문화 인프라를 만들겠다고 하면서 어쩜 이리도 쪼잔한지. 차라리 문화강국을 만들겠다는 말을 하지 말던가.

: 문화예술계에는 정치인이 없나요?

: 유 모씨

: 최 모씨

: 그 분들 뭐했을까?

: 어떤 방식이 자리 잡히려면 지원은 당연히 필요해요. 밀양연극제는 밀양의 대표 콘텐츠로 오래 된 축제에요. 밀양연극제 때 밀양 시장님이 무대에 올라 이런 말을 했어요. “한국의 아비뇽을 만들 겁니다.” 밀양연극제는 그리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밀양연극제 운영 주최가 밀양시청으로 넘어가서 밀양연극제가 이제는 시 차원의 사업이 됐어요. 들어보니 밀양연극제로 인한 관광 수익이 많이 나온다더라고요. 밀양 시민 뿐 아니라 전국에서 많이들 오는 거죠. 처음에는 지원금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티켓 수익, 관광 수익이 나오는 거예요. 현재 예술 분야의 모든 지원이 단기간으로 이루어져요. 제가 밀양연극제 사업을 예로 든 이유는, 이 연극제의 경우 10년 이상의 지원을 받았기에 이만큼의 성과를 낼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서울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죠.

: 우리 필진도 한 10년 정도 지원해줬으면 좋겠어요. 지금 지원 받고 있는 사업은 10개월짜리라 곧 사업 기간이 끝나면 다른 지원사업을 찾아 전전해야만 해요.

: 아니, 애 키울 때도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의무교육이 중학교까지예요. 10개월이면 아직 엄마 뱃속에 있다 막 나온 건데, 이건 10개월짜리 애한테 “너네 왜 못 걷냐”라고 하는 거랑 같아요. 단기간 내에 성과를 바라거나, 지원해준다는 명목 하에 간섭을 일삼아서는 안 돼요. 또한 연극인들 역시 지원사업에 안주하여 투정만 부리지 말고 스스로 쓸모를 입증해야 해요. 돈이 안 되는 연극이라도 연극은 사회에 쓸모가 있다고. 연극인들의 외침이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들게끔.

: 지금까지 한 얘기를 종합해보면 상업극과 비상업극이라는 구분 자체는 사실상 의미가 없는 것이고, 이렇게 연극이 자본과 시장에서 멀어진 게 연극인들의 문제일 수도, 시스템의 문제일수도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앞서 임성현씨가 말한 이상적인 것들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개개인이 뭘 할 수 있을지 고민이에요.

: 계속 떠들어야죠. 대신 혼자 떠들면 또라이밖에 안 되니 우리가 다 같이 해야죠. 필진이라는 이름으로 모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