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터그의 역할은 한 마디로 규정하기 어렵다. 작업 환경과 방식에 따라 수행해야 할 일들이 유동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극장에 상주하며 극장 운영 전반과 극장 소속 극단의 레퍼토리를 총괄하는 ‘극장 드라마터그’가 있는가 하면, 한 극단에 소속되어 극단의 활동 전반에 참여하는 드라마터그를 ‘극단(혹은 상주) 드라마터그’로 지칭하기도 한다. 극작가의 집필단계에 긴밀히 협력하여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극 구조를 점검하는 드라마터그는 ‘리터러리 매니저’라고 부르기도 하고, 공연 현장에 투입되어 한 공연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제작 과정에 참여하는 드라마터그는 흔히 ‘프로덕션 드라마터그’라 부른다. 이와 같이 소속과 역할에 따라 드라마터그를 부르는 명칭은 다양하다.

김민승은 극단 그린피그에서 드라마터그로 다수의 작업을 함께 해왔다. 이러한 점에서 김민승은 극단 드라마터그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한 작품의 시작부터 끝까지의 제작 단계에 창작자로서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프로덕션 드라마터그’이기도 하다. 따라서 김민승의 드라마터그 작업의 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모호하게 느껴지던 드라마터그의 명칭과 역할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하게나마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린피그와 김민승의 작업이 포스트드라마의 성격이 강한 작품이며, 많은 경우 공동창작을 기반으로 한 디바이즈 연극의 제작방식을 취한다는 점에서 동시대 연극 경향 속에서 드라마터그의 새로운 역할을 탐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김민승 Profile

이름 : 김민승

직업 : 드라마터그 및 극작가

첫 드라마터지 작업 : 2011년 <나는야쎅쓰왕> (윤한솔 연출, 공동구성)

가장 애정하는 작업 : 2013년 <빨갱이. 갱생을 위한 연구(가제)> (윤한솔 연출, 공동구성)

드라마터그로서의 예술관 : 모든 역할들의 중간 연결고리가 되는 드라마터그

부채감으로 시작된 연극과의 인연

김민승은 공연에 드라마터그로 참여하고, 극작을 하며 연극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이어왔다. 연극 전공자가 아니었던 김민승이 연극계에 발을 담그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가 주관하는 젊은비평가상을 수상하게 된 김민승은 연극에 큰 관심이 없던 자신이 상을 받자 일종의 미안함을 느꼈다고 한다. 이후 일종의 부채감으로 연극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김민승은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 전문사 과정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인 연극 공부를 시작했다. 그 비슷한 시점에 ‘공연과 이론을 위한 모임(공이모)’의 추천을 통해 연출가 윤한솔의 작업에 드라마터그로 함께하면서 현장작업도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드라마터그 겸 작가의 길을 걸으면서 연극 연출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 학내에서 직접 작품을 연출하기도 했다. 비록 공연의 완성도는 기대에 못 미쳤지만, 무대를 직접 연출해본 경험은 이후 연출과의 긴밀한 협업을 요구하는 드라마터그나 작가의 작업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드라마터그의 작업을 시작한 김민승에게 드라마터그의 역할이 무엇인지 물었다. 한참을 고심하던 김민승은 드라마터그란 ‘중간 연결고리’ 역할이라고 답했다.

“상황에 따라 늘 달라지기 때문에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지난 작업 과정을 되돌아보면 결국 모든 역할들의 중간 연결고리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누군가가 해야 하는 연결고리역할이 있다면 그 역할을 했어요.”

사이를 연결하는 작업

김민승이 드라마터그로서 참여한 첫 작품은 그린피그의 <나는야쎅쓰왕>(2011)이었다. <나는야쎅쓰왕>은 그린피그 연출부 네 명이서 공동창작 한 디바이즈 연극이다. 디바이즈 연극(devised theatre)이란 ‘방법을 궁리하는’ 연극으로써, 공연에 참여한 모든 구성원이 공연에 바탕이 되는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연극언어로 만들어가는 작업방식을 뜻한다. 따라서 모든 구성원이 수평적으로 공연 창작 과정에 참여하는 디바이즈 연극은 연출자 중심으로 위계가 형성된 전통적인 연극제작 방식을 해체하는 수단이 된다.

당시 이 공연은 드라마를 철저히 배제한 채 텍스트 읽기와 오브제, 행위로만 구성되는 연극을 기본 전제로 두었다고 한다. 따라서 공연의 제작과정은 성 담론에 대한 다양한 ‘텍스트 읽기’와 텍스트와 오브제, 행위들을 무대 위에 ‘구성’하는 두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김민승의 드라마터지 작업은 함께 읽을 텍스트를 논의하고, 공동창작의 일원으로서 함께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동시에 시시각각 변화하는 작업 방향이 큰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지를 점검하는 데에 집중되었다.

이 과정에서 김민승은 연출가 윤한솔과 치열하게 싸웠다고 한다. 그린피그 단원들과 개인적인 친분이나 작업 경험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낯섦을 지워가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둘의 팽팽한 충돌은 작품 속에 긴장감을 유지하도록 해주는 결과를 낳았다.

“정말 유치하게 싸워서 다신 안 볼 줄 알았어요. 낯가림이 있다 보니 낯선 사람과 있는 공포를 적개심으로 승화했던 것 같아요. 정말 ‘쎅쓰왕’스러웠죠. 내가 더 지적으로 잘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윤한솔 연출은 무대 위에서 화가 나있는 듯한 상태였는데, 그게 공연 때 극적 긴장감을 만들었어요. 그게 정말 좋았어요.”

<나는야쎅쓰왕>을 준비하면서 다신 안 볼 사람처럼 싸웠다는 김민승은 그러한 공연 준비 과정에서의 긴장이 무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데에 짜릿함을 느꼈다고 한다. 과정이 곧 공연 양식이 되는 디바이즈 연극에서 느낄 수 있는 쾌감을 맞본 김민승은 이후에도 그린피그와 지속적인 작업을 이어갔다.

김민승은 <빨갱이. 갱생 연구(가제)>를 가장 애정이 많이 가는 작품으로 꼽았다. 그녀는 이 작품 역시 내용과 형식이 딱 들어맞는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김민승은 단원들과 ‘국가보안법’에 대해 공부하고 관련 자료들을 찾는 등 디바이즈의 초기 작업을 함께하는 데에 가장 많은 시간을 썼다고 한다. 그린피그가 공연제작과정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과정이 ‘함께 배워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공연 제작의 후반부에 김민승이 집중한 일은 배우들이 수행한 백 몇 십 페이지에 달하는 ‘갱생 프로젝트’ 일지를 선별하고 공부한 텍스트를 발췌하는 작업이었다고 한다. 이 작업을 진행하면서 그린피그 단원들과 김민승은 ‘우리가 이렇게 비겁한 사람들이었나’ 하는 정도의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고 한다. 이러한 자괴감은 법제도의 폭력성과 소통불가능성을 고발하는 작품 큰 주제에 권력과 법 앞에 비겁한 우리 모습을 반추하는 또 하나의 의미를 덧붙였다.

<빨갱이. 갱생을 위한 연구(가제)> 역시 <나는야쎅쓰왕>과 마찬가지로 공동창작 기반의 디바이즈 연극 제작방식을 취했다. 반면 이 작품은 많은 참여인원과 제작의 여정을 함께하다보니 한 개인의 참여 정도가 구체적인 공연의 결과물로 이어지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한다. 김민승은 드라마터그도 마찬가지여서, 공연 안에서 다른 구성원들보다 더 뚜렷한 기여도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드라마터그가 더 많은 기여를 할수록 꼭 더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다만 그러한 작업 과정이 공연의 재료가 되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강조한다.

“팀원 모두가 공연의 재료가 되고, 드라마터그 역시 마찬가지에요. 다만 디바이즈 연극에서 연출과 드라마터그는 모두가 모아온 다양한 재료들을 배치 · 배열하며 큰 흐름을 잡아가는 선택의 역할도 많이 하게 돼요. 이건 수행적 글쓰기의 맥락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어요. 배우가 리허설 하는 걸 보다가 구조를 깨닫기도 하거든요.”

이처럼 공연의 큰 그림을 그리고 선택해야하는 ‘배치’ 단계서 드라마터그는 연출자와 함께 배우들이 보여주는 장면들을 알맞게 구성하고 필요에 따라 각 장면을 수정하고 보안하거나 삭제하는 편집의 역할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연출가와 팽팽하게 대립했던 <나는야 쎅쓰왕>이나 공연 형식면에서 의견 차이를 보였던 <아무튼, 백석>과는 달리 연극 형식이 제안되던 초기에 ‘이것은 딱’이라는 형식에 대한 확신이 섰다고 한다. 따라서 이전 작품에서와 같은 큰 충돌은 없었다고 한다. 반면, 드라마터그의 노력이 공연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다보니 ‘내가 이 작품에서 뭘 했지?’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고 한다. 모든 창작자들이 공연을 공동으로 창작하는 디바이즈 연극에서는 필연적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김민승은 이러한 아쉬움에 대해 스스로를 잘 다스리며 다음 작업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반면, 매 공연이 끝나고 나면 앞으로의 작업에서 ‘뭘 해야 하지?’에 대한 고민은 남아있다고 한다.

드라마터그의 어려움과 의미

김민승 역시 드라마터그들이 자신의 당위성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좌절의 시간을 거쳤다. 특히 그린피그처럼 공동창작을 바탕으로 한 디바이즈 연극 제작방식을 주로 활용하는 극단에서의 작업은 늘 헛발질과 혼란의 연속이다. 드라마터그는 이 우여곡절 속에서 중심을 잡고 전체를 조망해야하고, 구성에 도움이 될 새로운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지만, 공연에서는 드라마터그의 노력들은 대게 작품의 기저에 낮게 깔려있다. 김민승은 무대화 된 작품 안에서 자신의 흔적을 찾기 힘들어 공연이 끝나고 나면 우울한 시간이 찾아온다고 했다. 또한 어떤 때에는 공동창작의 과정에서 치열하게 논쟁하더라도 최종 결정권은 연출에게 있다는 생각에 허무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창작에 참여한 모두가 결국 공연의 바탕을 이룬다는 것을 발견할 때, 속상한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드라마터그 작업을 시작하도록 하는 힘이 될 수 있다. 김민승은 “사소한 것은 묻히는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적어도 모든 단원들이 공동창작에서 재료가 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린피그가 오랜 기간 함께할 수 있는 힘은 함께 즐기는 과정” 덕분이라 말한다. 또한 무엇을 하든 드라마터그처럼 “경계가 모호한 상태”로 계속 있는 경험은 쉽지 않다는 점에서 김민승은 드라마터그 역할의 의미를 찾는다.

경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드라마터그

<빨갱이. 갱생을 위한 연구(가제)>나 <노래의 方式, 이야기의 方式-데모버젼>, <1984>와 같은 작품들에서 김민승의 역할은 ‘대본’ 혹은 ‘글쓰기’로 명시되어있다. 또한 <원치않은, 나혜석>의 경우 작가로 참여해 처음부터 끝까지 대본을 집필했다. 이때는 윤한솔에게 나혜석의 삶에 대한 글을 써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고, 중간중간 연출자의 아이디어에 도움을 받으면서 작품을 집필했다고 한다. 이처럼 그녀는 공연에 프로덕션 드라마터그로 참여하는 동시에 글쓰기를 전담하는 작가 중 하나로 참여하기도 했고, 어떤 때에는 글쓰기의 역할에 집중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민승에 따르면 이러한 역할 역시 넓은 범위에서 드라마터그의 영역에 해당될 수 있다고 한다. 원작 텍스트가 있는 경우에 드라마터그는 원작을 현재 공연의 방향에 맞춰 다시 쓰거나 일부 수정하는 각색자 역할을 하게 되는 반면, 고정된 텍스트가 없는 디바이즈 연극에서는 공연 준비과정에서 나오는 다양한 논의들을 취합해 정리하는 대표 글쓰기를 하게 된다. 따로 대표 글쓰기가 있는 경우에는 작업 과정이 글쓰기에 잘 반영되었는지 점검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김민승은 드라마터그와 작가의 이중 역할을 경계 없이 넘나들며 각 상황에서 필요한 글쓰기를 수행한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열린 태도와 유동적인 역할 수용 능력이 동시대 드라마터그에게 필요한 덕목이 아닌가 한다.

앞으로 드라마터그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한 김민승의 생각에도 역시 경계에 대한 사유가 묻어난다. 김민승은 드라마터그라는 역할 자체를 정착시키고 직업안정성을 높이고자 제도화된 방식을 취할 때, 과연 드라마터그를 더욱 드라마터그답게 만들어 줄 수 있을지에 의문을 표한다.

“다양한 방식의 창작이 나타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오히려 연극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경계를 느슨하게 만들고 모호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합니다.”

이는 명확하게 분할된 경계선을 흐리고 이를 넘나들며 새로운 역할의 가능성을 탐색할 때, 그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와 연극 경향 속에서 드라마터그가 계속해서 자신의 존재당위성을 증명할 수 있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김민승은 드라마터그를 꿈꾸는 이들에게 “공연에는 정답이 없다”는 말을 전한다. 그렇다. 드라마터그는 치밀하게 작품을 분석하고 정답을 찾아내는 ‘선생님’이 아니라, 다른 창작자들과 함께 없는 정답을 찾아 헤매고 자신들만의 정답을 만들어내는 여정의 동반자일지도 모르겠다.

(사진 제공 – 예준미, 극단 그린피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