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이 작용하는 3차원 공간에서 우리는 보통 바닥과 직접 맞닿거나 착용/운용/탑승 등의 방법을 통해 잡화나 기구 혹은 수송수단을 매개로 공간의 바닥 면과 위치 관계를 맺음으로써 물리적으로 존재한다. 다시 말해, 줄과 같은 장치에 의존한 채로 위로 잡아당기는 힘에 의해 공중에 매달려있다든지 하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우리의 신체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공간의 바닥 면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벽으로 둘러싸인 실내 공간의 바닥은 인공적으로 건조(建造)되어 대체로 수평면이고 경사면이고 할 것 없이 매끄럽고 평평하다. 그러나 옥외로 나오는 순간 우리는 수많은 종류의 불균질하고 불규칙한 성질의 바닥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것이 흙이나 암반과 같은 자연물로 덮여있든 시멘트 등의 재료가 섞인 콘크리트(혼합물)로 잘 포장되어있든 간에, 그 아래에는 ‘땅’이 존재하고 있다.

흔히 (도심 속) 야외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설치작업이나 퍼포먼스를 ‘거리예술(street art)’이라 부르지만, 양 측면이 건축물로 둘러싸이기 전까지 거리(street)는 먼저 길(road)로서 존재하고 있었으며, 길(road)은 사람을 비롯한 생명체나 운송수단이 공간과 공간 사이를 일정하게 이동하기 위해 땅(ground) 위에 낸 결과물이다. <소리 탐사대>와 <용도변경 2017_용산기지>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지중공간의 전제조건인, 그러나 너무도 일상적이라 때때로 인지 영역 바깥으로 밀려나는 듯한 ‘땅’에 귀를 기울인다.

소리의 이식으로 전용(轉用)되는 공간의 생동성

고블디국 씨어터의 <소리 탐사대>는 서울거리예술축제 공식초청작으로 최근 개장한 문화비축기지에서, Gate 22의 <용도변경 2017_용산기지>는 1부와 2부로 나뉘어 용산미군기지 10개 게이트 앞 및 이태원에 소재한 클럽 안도에서 각각 진행되었다. 두 작품 모두 소리가 존재하는 곳을 찾아가 듣는 형태의 공연이다. 이때 소리들은 프로덕션 단계에서 혹은 실연 중에 이식된 것들과 원래 그 공간에서 으레 들을 수 있는 것들로 혼재되어있다. 전자는 공연 기간에 한시적으로만 발생하지만 후자는 이미 그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들 중 하나로서 발생과 소멸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이동-탐색-청취 크게 3가지 행위로 이루어진 이 패턴은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지극히 비일상적인 동시에 공간이 처음 만들어질 때 의도되고 예상되었던 바와 완전히 궤를 달리함으로써 공간을 경험하고 인지하는 새로운 층위를 형성해낸다. 그러나 두 작품이 이를 이끌어내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소리 탐사대>의 플로우는 단순하다. 문화비축기지 T2와 T3 사이의 비탈을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THE NATIONAL INSTITUTE FOR SONIC GEOLOGY(국립음향지질학연구소)’라고 적힌 푯말과 그 뒤로 흰 천막으로 만든 텐트가 세워져 있다. 텐트 안으로 들어가기 전 자신을 국립음향지질학연구소장이라고 소개하는 여성이 나타나 명함을 나눠주며 관객들 한 명 한 명과 인사를 나누고 텐트 안으로 안내한다. 텐트 안으로 들어서자 영국의 국립음향지질학연구소와 우리나라의 ‘잃어버린 소리 찾기 협회’ 연구원들이 관객들을 맞이한다. 그들의 설명에 의하면 공기 중에 퍼져나간 소리들이 땅속에 수천 년간 갇혀 있다가 최근 다시 분출되기 시작했으며 그들은 전국 각지를 돌며 음성분출지역을 찾아다니고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관객들이 들어온 텐트는 답사 현장의 베이스캠프인 것이다. 텐트 내부를 꼼꼼히 뜯어보면 전도(全圖) 위에는 지역별로 코멘트를 적어놓은 메모들이 덕지덕지 붙어있고 소리의 음파 및 지질을 분석한 자료들과 악기를 닮은 수상한 모양의 부품들이 곳곳에 흩어져있기도 하며 텐트 한쪽의 중앙 상단에는 조직 강령이 든 액자가 반듯하게 걸려있다. 연극을 위해 꾸며놓은 공간임을 몰랐다면 실제 연구 현장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오브제의 배치에서 섬세함과 노련함이 돋보인다. 관객들은 텐트를 빠져나와 잔디로 덮여있는 너른 비탈에서 본격적으로 소리를 찾아다닌다.

<용도변경 2017_용산기지>의 1부는 Gate 22로 명명된 클럽 안도에서 출발하여 10개의 게이트 중 한두 곳을 선택해 관객이 직접 찾아가는 여정으로 시작된다.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10개의 악기 연주 및 보이스 퍼포먼스들은 모두 현장에서 스마트폰 카메라를 통해 SNS 라이브 방송으로 송출되며 동시에 Gate 22에 있는 10대의 랩톱에서 동시재생 된다. 미군기지가 이전하기 전이었다면 공연과 촬영을 제지당하는 것은 당연하고 아무 관련도 없는 민간인이 게이트 앞에 접근하여 30분가량을 점유하는 것부터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게이트 앞은 대부분 여유 공간 없이 곧바로 담벼락과 나란히 보도가 나 있고 여러 차선으로 된 큰 도로 위로 자동차들이 줄줄이 내달린다. 퍼포머들은 주로 보도의 가장자리, 가로수나 담벼락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평소에는 말 그대로 사람(과 반려동물)의 통행을 위해 설치된 일종의 도시 시설물로, 서울 시내 곳곳에 나 있는 보도들과 기능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공간이다. 그러나 퍼포먼스가 시작되는 순간, 음악 소리와 일상의 소음이 충돌하며 넓은 범위에 산재된 10개의 각기 공간들은 전혀 새로운 종류의 에너지를 발산하기 시작한다.

감각의 확장을 거쳐 개별적 체험의 층위로

소리 탐사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영국 국립음향지질학연구소의 연구원은 자신들이 직접 개발한 ‘소리청취기구(Ear Trumpet)’를 소개하며 사용법을 알려주는데, 폐품으로 버려진 목관악기 및 금관악기를 구출해내어 개조해서 만든 것들이다. 이어피스 부분에 귀를 갖다 댄 채 벨 부분은 지면을 향해야 하며 이때 지면을 훑고(sweep), 심고(plant), 머무르는(linger) 일련의 과정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소리가 이미 발견된 곳에는 붉은 깃발이 꽂혀있고 그렇지 않은 장소에서 소리들을 찾아내면 근처에 있는 연구원들에게 알려주면 된다.

이들이 그리는 관객의 경험 지도는 새로운 소리를 찾아내는 것에 방점이 찍혀있지 않다. 그보다는 관객들이 손에 든 오브제를 매개로 감각 기관을 열고 공간과 소통하는 그 과정에 집중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열어야 할 것은 비단 귀뿐만이 아니다. 한 손으로는 이어피스 부분을 귀에 최대한 바짝 갖다 댄 채로 오브제를 소리가 심겨 있는 지면에 접촉하면(‘심으면’) 벨을 쥔 다른 한 손을 통해 소리가 진동으로 전해진다. 한창 땅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니 음향지질학연구소장 Dr. Harrows가 다가와 커다란 벨을 건네주며 주둥이가 넓은 윗부분을 공기 중으로 향하게 하여 제 자리에서 360˚를 돌아보라고 한다. 널찍한 입구를 통해 들어온 공기가 귓속을 훅 파고들 때 내가 느낀 것은 단순한 바람 소리 이상이었다. 청각과 촉각, 두 개의 감각이 한 번에 열리자 마치 다른 차원을 조우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것도 사실상 정교하게 고안되거나 개조되지도 않은, 낡은 악기들을 다소 거칠게 이어붙이기만 한 기구를 통해서 말이다.

<소리 탐사대>는 몇 가지 지침 사항 외에 관객들의 행동반경을 과하게 통제하려 들지 않고 관객들에게 최대한의 자유도를 준다. 이따금 다가와 소리를 듣는 자세를 제안하거나 노트를 꺼내 관객들의 말과 행동을 기록할 뿐이다. 수많은 설정과 장치들을 꽉 채워 넣고 관객들이 프로그래밍된 알고리즘대로만 움직여야 직성이 풀리는 여느 체현형(體現形) 작품들과 달리 체험의 영역은 오롯이 관객들에게 맡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각이 얼마나 예민한지에 따라, 작품의 세계관에 얼마나 동화되고 집중했는지에 따라, 심지어 그 날의 바람의 세기나 방향에 따라서도 체험의 깊이와 정도가 개인마다 천차만별이 된다. 체험형 공연으로서는 상당히 대담한 선택이다.

<용도변경 2017_용산기지>가 관객의 감각을 확장하는 방식 역시 상당히 개연적이다. 송한얼의 타악기 연주를 듣기 위해 Gate 11로 향하던 나는 평소보다 주변의 소리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용산미군기지를 가보는 게 아예 처음이었던 데다 안내문에는 번지수 하나 없이 대강의 위치만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실연자의 얼굴도 모르는 데다 단서라고는 오로지 악기의 종류뿐이었다. Gate 11에서 송한얼 퍼포머가 연주하기로 되어있는 타악기는 징, 정주, 팅샤 세 가지로 모두 금속악기들이었다. 용산미군기지 담벼락을 걷는 내내 나는 수많은 금속성 소리들에 둘러싸였다. 자동차 엔진 소리, 아스팔트 도로를 달리는 타이어의 휠 소리, 이따금 화물차에 실린 파이프 따위가 트레일러 내벽에 부딪히는 소리까지. 1부의 제목이 ‘땅의 노래’인 데는 분명 중의적인 의미일 것이다. ‘땅’의 울림, 혹은 ‘땅땅땅’거리는 날카롭거나 혹은 둔탁한 쇳소리. 그 날 10개의 게이트들에서 동시 발생한 소리들의 대다수가 타악기였고 그 중 금속악기의 비중이 컸던 것이 결코 우연 같지 않다. 다른 게이트로 향하는 경로는 Gate 11로의 그것과는 또 다른 요소들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공간을 탐구하고 재해석하는 방식에 대하여

공연이 이루어진 장소를 기준으로 하면 두 공연은 정반대로 분류된다. <용도변경 2017_용산기지>는 명백한 장소특정형(site-specific) 공연이나 <소리 탐사대>는 문화비축기지라는 특수한 공간에 맞추어 창작된 것은 아니다. 전자는 공간에 완벽하게 녹아들었을 뿐 아니라 자연환경과의 밀접한 상호작용을 보여주며 마치 장소특정형 공연처럼 보이기도 하나, 지금까지 여러 다른 장소들에서 진행된 레퍼토리다. 더군다나 해외 단체의 입장에서 문화비축기지가 원래 산자락에 있던 석유탱크를 그대로 살린 재생공간이라는 기본적인 배경 정도는 사전에 알고 있었겠지만, 문화비축기지라는 공간이 지닌 역사적 내러티브가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있어 어떤 동시대적 의미와 맥락을 지니는지 온전히 파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Gate 22의 경우 실제로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용산미군기지 공간에 대한 리서치를 오랜 기간 수행해왔고, 담벼락 길 걷기 투어, 기지 주변 개발 현장 답사, 야외 세미나 등 다양한 시도가 수반되었다. 후자의 경우 처음 기획된 장소를 벗어나 버리면 그 자체만으로는 서사를 갖지 못하는 개별적 음악 퍼포먼스들의 집합에 지나지 않으며, 용산미군기지에서 이루어져야만 비로소 원래의 의미를 지닌 작품으로 완성된다.

그러나 <소리 탐사대>와 <용도변경 2017_용산기지>가 공간을 해체하여 그 위에 재구축한 작품세계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뛰어났으며 또한 장소의 특성과 맞아떨어졌다. 문화비축기지의 전신인 마포석유비축기지는 유신 정권과 산업화 시대의 산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간이 재생되는 과정에서 그 원형이 최대한 보존되고 활용되었다. (재)개발에서 재생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이자 과거에 대한 성찰이다. 거기에 건축 기획 단계에서 신중하고 치밀한 설계가 더해져 공간의 내러티브가 완성되었다. 본디 건축물은 하드웨어일 뿐이고 어떤 소프트웨어를 채워 넣느냐에 따라 공간의 성격이 결정되기 마련인데, 그렇다고 문화비축기지에 외부에서 다른 콘텐츠가 끼어들 틈이 없다고 느껴지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밀도가 높고 새로운 무언가를 채워 넣기보다 주어진 요소와 (자연)환경을 기반으로 공간의 층위를 확장해나가는 방향이 나아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소리 탐사대>는 문화비축기지에 접근하는 방식에 대한 일종의 제언으로도 받아들여졌다. 반면 용산미군기지는 내부 시설물을 선택적으로만 철거하여 생태공원으로 조성될 것이라고는 하나 기지 내 한미연합사령부가 철수 계획을 번복하면서 어떤 방향으로 재생될지 미지수인 상태다. 아직 내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부지가 대부분이다. 그런 와중에 일제강점기 당시 병영시설이 그대로 남아있는 역사적 공간이며 20세기 초반 당시 일본이 처음 군용지로 만들 때 마을 하나를 밀어버린 자리였기도 하다. 이렇게 용산미군기지의 정체성은 여전히 진행형이며 드러나지 않은 것들이 무궁무진하다. 용산공원 개발계획을 두고 수많은 가치판단이 오가는 가운뎃소리를 매개로 하여 공간을 해체하고 재구성한 <용도변경 2017_용산기지>의 관점은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런 두 작품이 모두 ‘땅’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도 재미있다. 이번 작업들이 서울에서 가장 논쟁적인 두 공간에 어떤 분기점이 될지 기대되는 바이다.

(사진 제공 – 스텔라(본인) / 서울거리예술축제 /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