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토끼 빨간 토끼>의 작가 낫심 술리만푸어에게

안녕하세요, 낫심 저는 한국에 있는 당신의 관객이에요. 저는 2017년 9월 24일 저녁 7시 김소희 배우 편의 <하얀 토끼 빨간 토끼>를 봤어요. 한국의 서울에서는 매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Seoul Perporming Arts Festival, SPAF)’가 열려요. 해외 유수의 공연을 내 고국에서 볼 수 있기에 저는 매년 열심히 SPAF 공연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 2017년 SPAF의 기획공연으로 선정된 당신의 작품은 모든 관객들의 기대작이었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당신의 작품은 파격적이잖아요. 공연 당일 무대에서 공개되는 대본. 리허설 없이 배우와 관객 모두 처음 보는 즉흥극. 그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6명의 배우. 사실 ‘연기의 신’이라고 불리는 배우들이 당황하는 것도 좀 보고 싶었어요. 한 편밖에 못 봤지만.

당신이 이 작품을 쓰게 된 계기는 사전 제공된 보도자료나 공연 텍스트로도 확인했어요. 당신은 이란 사람이고, 이란의 강제 군 복무에 거부하여 군 입대를 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서 여권이 폐지되어 외국 여행을 금지당했다구요. 이란에 고립되게 되자, 작품으로 전 세계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2010년 <하얀 토끼 빨간 토끼>를 썼죠. 당신 작품은 2011년 영국 에딘버러 페스티벌과 토론토 썸머워크 페스티벌에서 초연되었고, 현재까지 영국, 캐나다, 독일, 미국, 호주, 스웨덴 등 32개국에서 공연되며 이슈가 되고 있고, 그리고 올해, 7년 만에 한국에도 당신을 만날 수 있게 되었어요. 당신은 2011년 이란에 있고, 저는 2017년 한국에 있는데 이렇게 작품을 통해 소통할 수 있다니, 마치 타임슬립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 같네요. 반가워요~

혹시 한국에 대해 알고 있나요? 한국도 이란과 마찬가지로 의무군복무가 있어요. 우리 가족들, 친구들, 대부분의 남자들은 군대를 경험했고, 한국사회 남성들에게 군 복무는 인생의 중요한 한 시기이죠. 그만큼 예민한 문제이기도 하구요. 아, 당신의 작품을 꼭 군 문제로 연결하려는 건 아니에요. 그저 당신이 군 복무를 거부해 이란 내에 고립된 상황이 낯설지 않다는 한국의 문화적 풍토를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당신의 작품이 당신이 원한 것처럼 특정한 정치적 의도로 연관되지 않았어요. 오히려 보편적인 관점에서 당신의 작품이 보였죠.

이제 내가 공연에 대해 이야기를 전달해줄게요. 

(참고로 당신은 공연마다 기록자를 지정하지만, 전 그 기록자가 아니에요. 매우 개인적인 관심으로 글을 쓰고 있어요). 물이 든 컵 두 잔이 놓인 테이블, 의자, 사다리, 당신의 유일한 무대 지시사항이 갖추어진 무대였어요. 공연이 시작하면서 SPAF 프로그램 디렉터인 이병훈 연출이 나와 김소희 배우를 소개했어요. 그녀는 수상한 가루가 든 통을 가지고 들어오더군요. 물론 그것도 당신의 대본에 나온 소품이었죠. 이병훈 연출은 대본을 전달하면서 윌리엄 바즈의 이아고 연기와 그의 연기에 너무 심취하여 무대에서 그를 총으로 사살한 군인 관객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면서 우리에게 “가장 이상적인 배우와 가장 이상적인 관객”을 요청했죠. 당신이 생각하는 당신 연극의 이상적인 관객은 누구인가요? 이 편지 말미에 당신이 원하는 관객을 만날 수 있다면 좋겠네요.

작품을 처음 본 김소희 배우는 많이 당황했어요. 페이지를 한 장 넘겨 읽기도 했고, 당신의 글에 의문을 드러내기도 했구요. 오해하지 마시기 바라요. 관객과의 대화에서 밝힌 내용이지만, 그녀는 텍스트와 싸우면서 연기의 답을 찾는 편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러다 보니 처음 보는 텍스트를 빠르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해요. 대신 공연 내내 그녀의 무대 연륜과 배우로서의 품격, 인간적인 면모가 빛을 발하는 시간이었어요. 김소희 배우는 절대적으로 작품을 믿고, 작가를 믿고, 관객을 믿었어요. 그리고 당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공연을 보러온 관객을 지키기 위해 공연을 포기하지 않았죠(이 또한 사족이지만, 관객과의 대화에서 김소희 배우는 “공연 도중 도망가고 싶었다”고 할 정도로 이 작품이 어려웠던 것 같아요). 작품이 이해되지 않으면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관객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시 앞으로 돌아갔어요. 그리고 당신의 지문을 배우의 재치로 다 수행했어요. 맙소사, 타조 흉내를 내는 김소희 배우라니!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죠. 당신의 작품에서 가장 이상적인 배우란 김소희 배우였다고 전 감히 말하고 싶어요.

당신은 배우뿐 아니라 관객에게도 무대라는 짐을 나눠지게 했죠. 토끼와 곰, 까마귀, 토끼의 서커스 비용을 내준 관객, 빨간 토끼, 하얀 토끼들, 기록자, 대본을 전달받은 다음 세대 등 관객에게 다양한 역할을 주었어요. 그날 관객은 115명이었고, 그중 전 101번째 관객이었어요. 저도 하얀 토끼가 되어 무대에 올랐는데요, 전 좋은 관객이 되고 싶어 시키는 대로 열심히 따라 움직였지만, 관객에게 좋은 경험을 주지 못했어요. 배우로서 아쉽다 보니 그 상황이 크게 기억에 남질 않네요. 극에 집중하지 못한 걸 보면 전 이상적인 배우도 이상적인 관객도 아니었어요. 다만 저 외의 관객들은 매 순간 집중하면서 더 좋은 장면을 연출해주었어요.

그럼 당신은 어떤 작가인가요?

당신은 서커스에 간 토끼, 그를 불러 세워 돈을 요구한 곰, 그를 감시하는 까마귀 등의 우화를 들려주었고, 배우가 가져온 독극물을 물에 타게 했죠. 그리고 외삼촌이 했다는 ‘하얀 토끼 빨간 토끼’ 실험을 소개했어요. 제일 먼저 사다리 위의 당근을 차지한 토끼는 계속 당근을 차지하게 되죠. 이 녀석을 빨간 토끼로 표시하구요. 나머지 하얀 토끼는 당근도 없이 찬물을 끼얹는 벌을 받게 되어요. 이 실험이 계속 반복되면 하얀 토끼들은 당근을 쟁취하기보다는 빨간 토끼를 물어뜯는 방법으로 기회를 얻고자 하죠. 빨간 토끼를 방출하고 새로운 토끼를 들여와도 하얀 토끼들은 당근을 쟁취하지 않아요. 찬물이 끼얹어지지 않아도 빨간 토끼를 공격하구요. 하얀 토끼 빨간 토끼 실험은 ‘습성’이 자리 잡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실험이었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신은 당신의 입이 되어준 배우에게 직접 독극물을 타게 하고 그 독극물이 든 잔과 아닌 잔을 선택하게 했어요. 관객도 모르게(관객들이 눈을 감고 있는 사이) 물 잔을 섞었죠. 당신의 입이 된 배우는 독이 든 잔과 그냥 물인 잔을 알고 있지만 마지막까지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 모르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신은 배우 스스로 독극물이 든 잔과 그냥 물 잔 중 선택을 하게 하죠. 정중한 어투와 재미있는 이야기 구성으로 관객과 대화를 하고 있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당신의 실험이었군요! 선택을 강요당하고 억압당한 당신처럼, 당신 또한 배우에게 삶과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라며 한 시간 동안 우리를 조종했어요. 당신도 역시 작가라는 이름으로 잔인하군요.

우리의 결말을 알려드릴께요.

이것은 연극이고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관객들은 삶과 죽음의 선택의 기로에 놓인 배우가 걱정되었어요. 그리고 그녀에게 차라리 선택하지 말라고 했죠. 당신의 말을 거부하라구요. 하지만 김소희 배우는 선택을 하기로 ‘선택’했어요. 작품은 계속되어야 하고, 배우는 작가를 믿어야 하니까요. 그녀는 어떤 잔을 선택했죠. 그리고 김소희 배우가 물 잔을 들이키는 순간, 대본을 받은 관객, 그러니까 다음 세대로 지목된 관객이 나머지 물 잔을 들고 배우와 함께 마셨어요.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어요. 김소희 배우도 관객들도 모두 놀랐죠.

무슨 일이 일어났냐구요? 아무 일도요!

배우가 물 잔을 비운 것으로 모든 공연이 마쳤으므로 우린 누가 독극물을 마셨는지 알 수 없었어요. 공연이 끝나고 우리는 관객과의 대화를 시작했고, 김소희 배우가 삶을 선택했다는 것으로 그 관객이 독극물이 든 잔을 마셨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 관객은 독극물을 마셨어요. 어느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잔을 집어 들었다구요. 당신의 실험에 전혀 없었던 “행동”을 했어요.

김소희 편의 <하얀 토끼 빨간 토끼>를 본 것이 다행이었어요(물론 다른 공연도 다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고 관객과의 대화에서 언급되었어요. 무려 6회 공연을 다 보신 관객이 두 분이나 계시더군요). 앵무새처럼 당신의 말을 전달하기만 한다 하더라도 배우의 생을 계속 살 것이라고 자신하는 김소희 배우의 삶에 대한 선택도 멋졌고(왜냐하면 당신이 부여한 몇 가지 조건들은 죽음을 가리키고 있었잖아요!), 그리고 그녀를 진심으로 생각한 관객들의 선택 만류도 멋졌고, 마지막으로 그녀의 선택을 서슴없이 나눠 짊어졌던 다음 대본의 주인의 “행동”도 이상적이었거든요. 앞서 가장 이상적인 관객에 대해 언급했죠. 그가 바로 당신의 작품의 가장 이상적인 관객이었어요.

세상은 시스템으로 개인을 훈련하죠. 당신이 하얀 토끼 빨간 토끼 실험을 통해 그 현상을 관객에게 보여줬다면, 이번 공연의 결말, 당신이 미처 기재하지 못한 미지의 관객 행동을 통해 우린 훈련 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어요. 전 얼마 전에 회사를 관뒀어요. 회사에서 하얀 토끼가 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낫심, 우리는 하얀 토끼가 아니에요. 당신의 작품을 통해 전 세계 당신의 관객들은 생각과 행동을 하고 있어요. 이 사실이 당신에게 꼭 전달되었으면 했어요.

진심으로 언젠가는 당신을 만나고 싶어요. 이란에서든 한국에서든, 아니면 다른 곳에서든요. 건강하길 바랄게요. 한국에서 당신의 관객이.

(사진 제공 – 하얀 토끼 빨간 토끼 프로그램북 / Flickr / 인스타그램@soonju_bravo_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