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람 작가가 다시 거리로 나왔다. 가장 최근에 플랫폼-엘(PLATFORM-L) 컨템포러리 아트센터에서 선보였던 <플러그인 시티 '모의 술집' PLUG-IN CITY 'Mo's Bar'> 이후 5개월 만에, 프로젝트 그룹 ‘헤드쿼터:무제의길 Untitled Road’로서가 아닌 개인 작업으로 돌아온 것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세운상가와 세운교 일대 청계천이다. 이른바 ‘무제 시리즈’부터 김보람 작가의 작업을 빠짐없이 겪어온 입장에서 외려 단출하게까지 느껴지는 베뉴(Venue)들이다. 실제로 <무제의 산 Untitled Mountain>–<무제의 열차 Untitled Train>–<플러그인 시티 '모의 술집' PLUG-IN CITY 'Mo's Bar'>(이하 <플러그인 시티>)의 공간들은 다양함을 넘어 때때로 역동적이기까지 했으니 말이다.(2016 안산국제거리극축제 <무제의 열차 Untitled Train>에서 4호선 오이도행 지하철) 무제 시리즈가 ‘도시/공간 탐험’이었다면 〈Fishy City〉는 완전한 게임의 포맷으로 만들어졌다.

관객의 이동이 반드시 전제되었던 무제 시리즈는 장르적 경계만큼이나 물리적/관념적 공간을 넘나드는 것 역시 거침없었다. 무제 시리즈는 언제나 공간의 확장 및 적층이 핵심적으로 발생했다. 무제 시리즈는 매번 관객의 머리에 헤드셋을 씌우고 태블릿PC를 들렸다. 발은 바닥이나 지면에 닿은 채 쉴 새 없이 걸었다 멈췄다 하지만, 시각과 청각의 인지 영역에는 최소 2-3개의 세계가 동시에 들어와 있었다. 차음성이 뛰어난 헤드셋은 (그것을 착용하고 있을 때만큼은) 실제 공간과 나를 일차적으로 단절시키는 한편, 눈앞에는 정밀하게 제작된 2D 맵핑 영상 내지는 증강현실 앱에서 구현되는 이미지들이 나의 동선을 따라 태블릿의 디스플레이를 매개로 공간 위에 레이어링 되었다. 나는 그 상태로 건물 안을 오르내리거나 건물 바깥으로 나와 걷기도 하고 한때는 열차에 탑승해 도시(안산)를 내달리기도 했다.

도심을 횡단하는 놀이 혹은 유람 − 하천의 물줄기를 따라, 터 무늬를 따라

〈Fishy City〉에서는 헤드셋과 태블릿 대신 형광색의 낚시 조끼와 타이머 그리고 ‘청계천 낚시 지도 FISHY CITY MAP’가 주어진다. 이 한 장짜리 지도는 게임 인터페이스를 시각화한 것이다. 스타팅 포인트에서는 아이템 지급과 동시에 퀘스트가 전달된다. 진행스탭[NPC]가 퀘스트 수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단서를 제공하고 타이머를 작동시켜주면 그때부터 게임은 시작되는 것이다. 첫 번째 퀘스트를 달성하려면 먼저 청계천 주변에서 ‘베테랑 어부’를 찾아 4개의 질문에 대한 답을 얻어 도시 어부 지도를 완성해야 한다. 그렇게 나에게는 지나치게 오버핏인 낚시 조끼를 걸쳐 입고 베테랑 어부를 찾아 세운교 아래를 흐르는 청계천을 따라 걷다 문득, 청계천의 물줄기가 땅에 새겨진 고유한 지문(地文)과 맞닿아있음을 느꼈다. 종로구 백운동의 복개천에서 발원하여 원도심을 가로질러 동대문에까지 이르는 청계천을 보며 나는 한편으로 9월 초에 다녀온 인천을 떠올렸다.

히피 차림을 한 배우가 흰색 종이테이프를 인천문화예술회관 전시장 로비 바닥에 주욱 붙여 길을 내고 관객들은 테이프를 일렬로 밟으며 그 길을 따라간다. 매표소에서 티켓 대신 붉은색 실링왁스로 인장을 찍어 봉인한 봉투를 건네주며 내 손금을 유심히 봐줬던 사람이다. 복도를 지나오면 스마트폰 메신저로 영상이 하나 전송된다. 영상 속에는 나와 같은 공간, 같은 위치에 있는 한 여성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는 자신을 인천시립극단 소속 배우라 소개한다. 재생 버튼을 누르고 스마트폰 화면을 내 시선에 맞춰 든 채 영상 속 배우의 출근길을 뒤따라간다. 관객들은 어느새 인천문화예술회관을 나와 다 같이 1호선 간석역으로 이동, 인천행 열차를 탄다. 인천역에 내려 플랫폼을 빠져나오는 순간 현재에서 과거로 타임슬립이 일어나고, <2017 터무늬 있는 연극X인천>의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된다.

<2017 터무늬 있는 연극X인천>(이하 <터무늬>)은 『청소년연극페스티벌 – 청소년극 + 극장 밖 연극』에서 진행된 프로그램으로 앤드씨어터, 래빗홀씨어터, 댄스컴퍼니 명, 프로젝트 공사 중이 공동창작한 몰입형 연극(immersive theatre)이다. 작품에는 여러 장소들을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들과 각각의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인물들이 존재한다. 또한 이들은 (도시 (재)개발 사업으로 인한) ‘소외’라는 공통된 키워드에 의해 유기적으로 엮인다. 작품의 서사는 동인천 지역을 관통하고 관객들은 구도심 일대를 걸어 다니며 유람한다. 이 과정에서 관객들은 퍼포먼스 관람을 포함해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된다.

한편, 〈Fishy City〉는 도시 어부 지도를 완성하고 나면 낚시터로 이동하여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다. 물고기의 외형+몸통+꼬리에 각기 해당하는 카드 패를 조합하여 가장 많은 개체 수를 자신의 안전구역에 확보하는 사람이 승리하는 비교적 단순한 룰의 3-4인용 카드게임이다. 조합에 따른 점수의 차등이 없다는 점을 제외하면 포커 게임이나 과거 투전 놀이에 가깝다. 여기에 다음 스테이지(낚시터)로 진입하면 청계천 복원 이후 인위적인 유속감소로 인해 청계천 물고기의 생태계가 급변하면서 기존의 분류 체계를 벗어난 ‘종간잡종’ 물고기가 새롭게 출현하고 있다는 설정이 카드 덱(deck)과 게임 룰에 추가된다. 다시 말해 게임이 진행될수록 기본 5가지 조합 외에 유효한 족보가 무궁무진해지는 것이다.

두 작품 모두 도시생태계의 전환을 각 도시의 근현대사적 맥락에서 통찰하는 주제의식을 가지지만 〈Fishy City〉는 공연보다는 놀이가 되기를 지향한다. 〈Fishy City〉가 도시 프로젝트 『커넥티드 시티 Connected City』의 프로그램 중 「플레이어블 시티 PLAYABLE CITY」에 속해있는 까닭이다. 기존의 작품에서도 수동적 체험과 적극적 참여를 넘나들긴 했었지만, 처음부터 ‘놀이’로 접근하는 발상은 작품 자체의 패러다임을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도시의 이방인 혹은 구성원으로서의 ‘ / I As A Participant Or A Player

이 글의 도입부에서 언급했듯 세운교/세운상가와 청계천은 〈Fishy City〉가 이루어지는 공간이면서 또한 작품의 실제 배경과 일치한다. 종로구와 중구(을지로)의 경계에 걸쳐있는 서울의 원도심으로 고유의 역사성과 정치성을 지닌 장소들이기도 하다. 위치적으로 서울의 행정적 중심지에서 불과 몇 km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 외에도 세운상가와 청계천은 우리나라의 도시 개발/계획의 측면에서 근대와 현대를 아우르는 사료(史料)―역사적 건축물―이다. 실제로 세운상가는 7-80년대 개발독재의 산물이자 대표적인 근대 건축물로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철거될 위기에 놓여있다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원래의 모습을 오롯이 지켜낼 수 있었다. 2000년대 초중반의 청계천 복원은 지금까지도 가장 논쟁적으로 꼽히는 도시개발사업으로 일각에서는 오늘날 도시재생 거버넌스의 전환점이자 기폭제로 평가되기도 한다. 중첩된 시간은 강한 장소성으로 전환된다.

올해로 서울살이 5년 차인 나는 이제 나고 자란 고향인 부산보다 서울이 익숙한 서울 시민이자 이 도시의 이슈를 공유하는 한 명의 구성원이다. 그 상태에서 낚시 조끼를 착용하는 순간 나는 ‘도시 어부’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으며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내가 실재하는 장소들을 사유(思惟)한다. 2015년도 지금의 서울 시청과 구 시청 건물인 서울도서관에서 이루어졌던 <무제의 산>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그때의 나는 작가가 프로그래밍한 대로 작품의 내러티브 안으로 들어가 주어진 콘텐츠를 팔로잉하는 관람자(spectator)였다. 1년 뒤 <무제의 열차>에서 오로지 작품을 목적으로 안산을 찾은 이방인이었던 나는 ‘6장 종속적 구조물’에 이르러 직접 오브제를 ‘갖고 놀며’ 작품의 일부가 되었고 관람자(spectator)에서 참여자(participant)가 되었다. 그리고 올해 <플러그인 시티>에서는 참여자(participant)와 플레이어(player)의 경계에서 비교적 수동적인 플레이어(passive player)로서 이번에는 능동적인 플레이어(active player)로서 좀 더 적극적인 관여(engagement)가 일어난다. 잘 만들어진 콘솔게임의 타이틀을 깨는 것 같기도 하고 RPG게임에서 세계관 확장과 더불어 레벨업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터무늬>에서의 경험은 같은 듯 달랐다. 서울과는 달리 인천에서 나는 그저 방문객일 뿐이다. 게다가 내가 관객으로서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 겪었던 포지션의 변화는 하나의 작품 안에서 단계적으로 이루어졌다. 인천역에 내려 처음 도착한 곳은 해안 매립으로 갯벌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북성포구 선착장이다. 여기서만 해도 퍼포머들이 관객들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오긴 하지만 아직까지 나는 관람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구도심으로 들어갈수록 시간은 과거로 돌려지고 나는 작품에 더 깊숙이 관여하게 된다. 배다리마을 어느 고가도로 밑에 이르면 끈이 짧은 가죽가방을 옆으로 멘 집배원이 자전거를 타고 나타나 관객들 한 명 한 명에게 ‘아벨’로부터 온 편지를 건네준다. 관객들은 배다리 헌책방 골목에 있는 아벨서점에서 책 한 권을 집어 몇 구절을 골라 옮겨 적고 From. 아벨이라고 적힌 봉투에 담아 답장을 부친다. 이야기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거나 진행을 주도하지는 않지만 관객은 어느새 작품의 중심에 놓여있다.

비정하게 해체된 물고기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추도(追悼) 혹은 변태(變態)

〈Fishy City〉의 낚시터는 총 2단계로 구성된다. 각자 무작위로 8장의 패가 주어지고 공공 영역에 놓인 패들과 조합하여 온전한 형태의 물고기를 완성한다. 이때 1번 낚시터에서는 앞서 도시 어부 지도에서 명시한 5가지 항목인 맛, 생김새, 독특함, 번식력, 내공에 맞는 조합만 만들 수 있다. 턴 당 조합 횟수는 제한이 없다. 1번 낚시터에서 게임을 무사히 마치고 우승자가 가려지면 레벨 1을 통과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운 보행교로 올라와 있는 2번 낚시터에서 새로운 판을 진행하는데, 이때부터 생존을 위해 환경에 적응한 ‘종간잡종’이 등장한다. 잡종 물고기를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서로 다른 항목의 몸통과 꼬리를 무작위로 조합해도 되고, 2번 낚시터에서는 여러 속성을 동시에 가진 하이브리드 외형 카드가 등장하기도 한다. 1번 낚시터에서 점수를 카운트하는 단위는 마리(같은 항목의 외형+몸통+꼬리로 조합된 물고기)였지만 2번 낚시터에서는 외형 카드를 제외한 몸통과 꼬리 카드를 장당 계산한다. 플레이어들이 탄생시킨 잡종 물고기들은 저녁에 청계천에 몰래 방생할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레벨 2를 통과하면 〈Fishy City〉는 끝이 난다.

<터무늬>에서는 파괴된 생태계를 훼손된 물고기에 은유한다. 표피가 반 이상 갈갈이 찢겨나가 골조가 훤히 드러난 물고기는 배다리 텃밭을 가로지르며 비로소 모습을 보인다. 물고기의 등장은 작품 초반부터 예견되어있었다. 간석역에서 인천행 열차에 탑승한 관객들은 음성 파일을 듣게 된다. 1호선을 타고 서울에 사는 인천시립극단의 단원이 자신의 출근길 이야기를 들려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천에서 서울로 출근할 때 자신은 서울에서 인천으로 향하는 것에 대해서 ‘물때가 안 맞다’라는 표현을 쓴다. ‘밀물이 막 들어올 때 거꾸로 흐르고 싶다’고 하며 청취자(관객)에게 열차의 진행 방향에 거슬러 맨 뒤 칸으로 이동하기를 제안한다. 동인천 과거 구도심 지역으로 시간여행을 하기에 앞서 한 마리의 물고기로 변하는 일종의 통과의례로 볼 수도 있겠다. 헌책방 골목과 배다리 텃밭을 지나 조금 너른 공터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 죽은 물고기에 대한 추모 의식이 시작된다. 이때 관객은 그저 의식을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아닌 애도의 주체로서 자리한다. 앞서 우리는 이미 헌책방 골목 옆 고가도로 아래에서 터전을 잃고 죽어간 생명들의 돌무덤 앞에 조문을 하고 온 뒤였다. 그곳에서 갯지렁이, 민꽃게, 바닷가재 가족을 위해 큰 소리로 아메리카 마카족 기도문을 외웠던 이는 어린 시절을 함께 한 물고기의 시체에 예를 갖추고 그 죽음을 엄숙히 기리며 연극은 자연스럽게 막을 내린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도시의 소외는 대상의 () 가리지 않는다

각각의 도시에서 작품은 무사히 마무리되었지만 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견축(見逐)되고 배제되는 이들은 여전히 실재한다. 도시의 소외는 말 못하는 생명체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도시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존재와 터전의 위협을 일상적으로 맞닥뜨린다. 운 좋게 적응하고 살아가는 이들도 있지만 누군가는 이 도시에서 더 이상 설 자리를 잃고 존재가 지워져 버리기도 한다. 자연계를 비롯한 도시 구성원들의 수많은 층위를 몇 시간짜리 작품에 담아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작품은 우리에게 질문을 건넬 뿐이다. 이후의 고민과 실천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다.

〈Fishy City〉를 작업하면서 김보람 작가는 평소보다 진지함과 무게감을 빼고 접근했다고 밝혔다. 플레이어블시티가 처음 시작된 영국의 복합예술공간 워터쉐드(Watershed)에 머무를 당시 레지던시 작가들이 시간이 날 때마다 가볍게 몸을 움직이고 그 안에서 작은 경쟁이 발생하는 것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게임의 형식을 취하되 서울의 실정에 맞게 풀어낸 결과물이 〈Fishy City〉인 것이다.

‘플러그-인 시티’는 건축가 피터 쿡이 구상한 도시 모델로 구성 요소들을 원하는 대로 꽂았다 뺐다 할 수 있는 컨셉이다. 김보람 작가는 종전 작품인 <플러그인 시티>에서 도시의 5가지 특징을 재료로 미술관 안에 동시대의 도시적 삶을 함축해냈다. “도시의 시스템과 보이지 않는 구조들 그리고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 요인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하”는 김보람 작가의 다음 작품은 어떤 이름의 도시일까.

(사진 제공 – 무제의 길 Untitled Road, 스텔라(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