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에 극장을 개관하면서 남산예술센터는 두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국내 창작초연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동시대성(contemporary) & 다원성(new wave)’에 부합하는 작품을 선보이는 것이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좋은 신작을 발굴하는 안목을 가지고 있고 연극의 새로운 흐름을 파악하고 있는 전문가가 극장에 상주할 필요가 있었다. 2012년 12월, 남산예술센터는 ‘극장 드라마터그’를 도입해 극장의 지향을 고려하여 전반적인 운영에 중심을 잡아주기를 기대했다. 많은 연극인들의 관심을 받으며 조만수가 남산예술센터의 첫 번째 드라마터그로 선임되었다(조만수와 함께 김주연이 마케팅 파트를 담당하는 드라마터그로 선임되었다). 조만수는 2012년부터 2016년까지 남산예술센터의 극장 그라마터그로 활동하면서 남산예술센터의 극장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공연프로그램을 구성하였으며, 다양한 극장 행사를 기획하였다.

남산의 극장 드라마터그 제도 시도는 드라마터그 영역을 확장하고 불안정한 드라마터그의 활동 환경을 안정시키기에 많은 한국의 드라마터그들에게 긍정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2016년 이후, 남산예술센터에는 더 이상 극장 드라마터그가 존재하지 않는다. 시스템 상의 한계로 인해 더 이상 이 제도를 유지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도입된 지 4년 만에 어려움에 직면한 극장 드라마터그 제도의 돌파구를 찾아보기 위해 국내 최초로 극장 드라마터그를 역임한 조만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만수 Profile

이름 : 조만수

직업 : 글을 쓰는 사람,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

첫 번째 드라마터지 작품 : 극단 김동수컴퍼니의 제작 사극 <문중록>(2003)

가장 좋아하는 희곡 :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나에게 드라마터그란? : 타인과 나의 창조성이 만나는 지점

드라마터그, 타인과 나의 창조성이 만나는 지점

극장 드라마터그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에 앞서, 우선 드라마터그라는 역할과 연극에 관한 조만수의 생각들을 들어보았다. 불문학을 전공하고 평론가이자 드라마터그로 활동해온 조만수는 스스로를 연극에 대한 ‘글 쓰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그에게서 ‘글쓰기’에 대한 강한 애착이 느껴졌다. 때문에 그는 연극에 참여할 때보다는 자신의 서재에서 글을 쓰고 있을 때 더 행복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드라마터그로 연극 작업에 꾸준히 참여해온 까닭은 드라마터그를 할 때 덜 외롭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연극을 만드는 과정은 연극하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삶이 소통하는 순간들이라 말한다. 또한 연극인들이 서로에 대한 애정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이기에 그가 펜을 잠시 내려고 연습실로 향하도록 만든다고 한다.

조만수는 공연을 만들 때 대상이 굉장히 다양한 잠재태라는 믿음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드라마터그가 한 방향으로만 작품을 만나면 드라마터그의 제한적인 시각이 잠재된 공연의 다양한 가능성을 닫아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작품과 연출가, 공연팀원들 등 공연 제작의 모든 구성요소들이 무수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잠재태라는 믿음 속에서 함께하게 될 때, 타인과 자신의 창조성이 만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믿음 속에서 작품을 만나게 , 내가 팀원에게 가지 가능성을 제시하면, 팀원들은 안에서 흥미로운 점들을 찾아가고, 그럼 나는 지점들을 다시 세분화하는 식으로 주고받게 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그는 공연제작의 과정에서 잘 싸우지 않는다고 한다. 연출을 어떠한 방향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 힘을 들이진 않는 것이다. 이는 답을 하나만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여러 가지 선택지 안에서 연출의 선택과 만나기 때문에 의견이 크게 상충할 경우는 별로 없었다고 한다.

조만수는 드라마터그를 기본적으로 ‘연출가의 스텝’이라 이해한다. 드라마터그는 연출이 가고자 하는 방향 속에서 선택을 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는 농담처럼 드라마터그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작품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MT를 가는 거라 말한다. 그만큼 배우들, 스텝들과의 끈끈한 유대와 신뢰 관계가 형성되어야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신뢰가 없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전달한다 한들 소용없다고 말한다. 사실상 연습실에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신뢰가 없으면 무의미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연습실을 연약한 자신의 모습을 다 노출하는 곳이라고 본다. 연출 역시 연습실에서는 헐벗은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없다면 자신을 방어하는 데에 시간을 소모하게 된다. 조만수는 방어하기에만 급급한 연습실에서는 서로의 잠재성을 끌어내는 창조적인 소통이 일어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때, 그가 말하는 신뢰 관계는 단순히 친한 것과는 다르다. 이는 상대의 독자적인 세계를 이해하고 있을 때 구축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공연비평보다는 작가론이나 연출론을 쓰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한다.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그 인물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시간을 쏟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작품을 대할 , 작품의 완성도는 관심사가 아닌 경우가 많아요. 어떤 작품들은 작품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삶의 어떤 순간을 흔들 때가 있잖아요. 제가 펜을 때는 그걸 정리하고 싶을 때예요. 이때 글이 연출가나 작가의 연극 인생에 동일한 감동으로 다가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써나갈 있죠.

연출가가 공연을 통해 평론가의 마음을 울리고, 평론가는 비평을 통해 연출가가 자신의 예술적 레퍼런스를 만들 수 있도록 자극할 때, 그리고 그런 관계가 지속되었을 때, 연출가와 평론가는 서로가 말하는 코드를 이해할 수 있다. 조만수는 그럴 때 연출가와 드라마터그의 관계로 만나도 좋은 신뢰관계가 형성된다고 본다. 그렇기에 그는 기관에서 주도해서 연출가와 드라마터그가 매칭되는 경우처럼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협업하게 되는 상황은 가급적 피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가 프로덕션 내에서 연출가와 신뢰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염두에 두는 또 다른 원칙은 불문학 작품으로 공연을 만드는 프로덕션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불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의 경우, 불문학을 공연화하는 프로덕션에서는 연출가와 지식적으로 비대칭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즉, 연출가와 드라마터그의 수평적인 관계를 중요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그는 창작초연 공연에 주로 참여하며, 가급적 나이차가 많이 나지 않는 연출가와 협업한다고 한다. 연출가와 동일한 출발선에서 출발하여 서로의 창의성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드라마터그를 작품에 대한 정보를 주는 역할로 한정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품에 필요한 정보는 해당 작품을 연구한 연극학자를 초빙해 특강을 듣는 것으로도 충분히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드라마터그는 필요한 정보를 주는 사람이 아니라 ‘이것이 드라마가 될 것인가’ 혹은 ‘이것이 어떠한 구조로 무대화 될 것인가’를 다루는 사람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이 과정에서 드라마터그가 팀 내에 유의미한 존재로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공연에서 가장 중요한 하나를 찾아야 한다고 본다. 연출가는 고민하고 선택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에, 드라마터그는 공연의 구조를 고민하고 의미를 추출하는 일에 전력해줄 수 있다. 이때 수백가지의 해석, 수백가지의 가능성 속에서 그 공연을 성립하도록 하는 단 한 가지, 그것을 텍스트에 보다 주력하는 드라마터그가 찾아준다면, 그 프로덕션에서 드라마터그의 몫은 어느 정도 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드라마터그가 프로덕션이 놓치지 않고 가져가야 하는 그 단 한 가지를 찾는 능력을 계속 훈련해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드라마터그는 결국 연출을 외롭지 않게 하는 사람이라 생각해요. 연출이 혼잣말 하지 않도록 대화상대가 되어주는 사람인거죠. 그리고 작품 안에서 연출, 배우들, 스텝들 간의 커뮤니케이션 중심에 있는 사람이어야 하겠죠. 드라마터그가 생각하는 작품을 만들게 하기 보다는 드라마터그를 통해서 모든 이들이 잠재력을 최대로 발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극장 드라마터그의 역할과 극장의 공공성

조만수는 한국에는 생소했던 제도인 극장 드라마터그를 4년 동안 몸소 경험했다. 남산예술센터는 예술감독이 없고 극장장이 극장 운영 전반의 책임자이었다. 그러나 극장장은 예술적 선택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더욱이 국내초연창작 작품을 무대화하는 것이 첫 번째 극장의 목표였기에, 예술적 측면을 고려하여 극장 운영의 밑그림을 그릴 드라마터그가 필요했다.

그가 극장 드라마터그로 선임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극장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었다. 창작초연작품 공연과 컨템퍼러리 & 뉴웨이브라는 기존의 정체성에서 다소 애매한 뉴웨이브를 제거하고 용어도 동시대성으로 바꾸었다. 내용의 측면에서도 동시대 문제를 다루는 동시대 작가들과 관련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형성했다.

공연의 프로그램을 선정하는 것 역시 중요한 극장 드라마터그의 임무였다. 그는 기본적으로 남산예술센터는 공공극장이기 때문에 창작단위로서의 대학로 극단들의 생태를 파괴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공동제작이라는 형태로 극단과의 공생을 도모하였다. 공모를 받고 받은 작품들에 대해 외부 심사위원들과 함께 의논하여 선정하였다. 또 다른 트랙으로 작가와 직접 접촉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는 좋은 작가의 신작을 확보하기 위해 대학로를 늘 예의주시해야했다고 한다. 작가들의 집필실 안에 어떤 작품들이 들어가있는지 파악하고 있어야 놓치지 않고 남산의 무대로 유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역시 희곡에 대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극장의 방향성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극장 드라마터그가 적임인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공공 극장으로서 시민들의 예술적 관심을 유도하거나 연극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다양한 행사 역시 진행하였다. 대표적으로는 ‘남산연극포럼’을 들 수 있다. 남산연극포럼은 담론의 장을 형성하기엔 구심점이 없던 연극계에 공간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예술가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주제를 선정해 활발한 토론을 이끌었다. 제3회에는 드라마터그에 관한 포럼을 진행하기도 했다. 드라마터그의 활동은 왕성해지는 반면 그에 대한 담론을 나눌 곳은 마땅치 않았던 당시의 상황에 드라마터그들과 관심 있는 시민들이 한데 모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리였다.

공공 극장의 드라마터그로 조만수는 관여하지 않는 일이 없을 정도로 극장 운영의 전반적인 부분에 참여하였고, 특히나 극장의 예술적 성취를 위해 필요한 노력들에 집중하여 개관한지 얼마 되지 않은 남산예술센터가 자리 잡는데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조만수는 현재의 한국 상황에서는 극장 드라마터그 제도를 유지하거나 융성하기 어렵다고 진단한다. 우선 선진적으로 극장 드라마터그 제도를 시도했던 남산예술센터도 조차 이를 유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만수에 따르면, 독일과 같이 드라마터그 활동이 많이 발전된 나라는 그들의 활동이 제도적으로 뒷받침 된다. 공공극장이 망처럼 전 지역에 뻗어있고, 프로듀싱 업무는 행정직과 드라마터그가 나눠 갖는 구조가 형성되어있다. 즉, 어느 역할이 하나의 직업으로 안정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활동할 수 있는 물적 토대들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만수는 현재 한국의 경우, 우선 공공극장에 상주하는 드라마터그가 필요하다는 연극계 밖에서의 사회적 합의 자체가 부족하다고 본다. 남산예술센터의 경우, 서울시의 내부조직인 서울문화재단 산하에 있는 공공 기관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울시나 문화재단의 운영에 좌우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있다. 극장 드라마터그 제도는 처음 생길 때부터 필요성과 상주 방식이 문제가 되어왔다고 한다. 왜 드라마터그라는 사람이 독점계약 형태로 계속해서 극장에 상주해야하는지 행정가들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금전적 지원을 기대할 수 없었다. 제도적 한계를 이겨내고 극장 드라마터그 제도를 공적인 극장에 유지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보았지만, 결국 4년 만에 남산예술센터의 극장 드라마터그 제도는 사라졌다.

조만수는 그 이유를 연극의, 나아가 문화예술의 공공성에 대한 인식 부족에서 찾는다. 문화예술이 시민들을 위한 의무이자 서비스라는 생각이 자리 잡지 못했고, 그저 양질의 삶을 사는 이들을 위한 혜택이나 문화상품 정도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조만수는 문화예술회관이 있어야 한다는 합의는 있지만, 그 이상의 전국적 단위에서 문화예술 소프트웨어에 대한 생각으로 나아가지는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지방에 있는 문화회관은 그저 대관 공연으로 맥을 이어가는 건물로만 존재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것이다. 지방 각 단위가 문화예술을 생산할 수 있는 힘이 없는 것이다. 그는 만약 이러한 지역 문화예술회관들이 자체적인 생산 능력을 갖추고 활성화되면 일할 사람들이 필요할 테고 자연스럽게 드라마터그의 역할도 늘어날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공공극장에 드라마터그가 필요하다는 인식 역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조만수는 공공극장 드라마터그를 ‘작품 자체와 극장의 방향성을 같이 고민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공공극장이 더 좋은 극장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작품의 예술적 성취와 공공기관으로서의 임무를 동시에 고민하고 이에 맞는 운영 전략을 세울 수 있는 전문가가 요구될 것이다. 이는 공공 극장 서비스의 질적인 측면과 직결된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조만수 역시 이러한 이유로 사라진 공공극장 드라마터그 제도가 다시 생겨야하며, 점차 더 많은 공공극장의 드라마터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를 위해서는 공공극장의 역할과 드라마터그의 역할을 알리는 담론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논의에 불씨를 붙일 수 있고 사회적 합의도 이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짧고 부족한 인터뷰 기사도 극장의 공공성과, 그 성취를 위해 필요한 드라마터그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아주 작은 불씨가 되길 희망해본다.

(사진 제공 – 예준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