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아 더 영! (We are the Young!)

: 최근 지인이 ‘젊은 작가들의 작업’에 대해 연구한다면서 1992년에 데뷔한 A 작가를 언급하더라. 내가 A 작가가 젊은 작가인지 의아스럽다고 했더니 그 지인은 “자기 예술관을 가지고 활동하는 창작자가 그 정도면 젊은 게 아닌가?”라고 대답했다. 나는 주변 또래 연극인들과 얘기할 때, 2006년에 데뷔한 B 연출과 C 연출이 ‘젊은 연극인’ 혹은 ‘신인’으로 분류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얘기하곤 한다. 연배 있는 분들 입장에선 그들을 충분히 ‘젊다’고 여길 수 있겠구나, 하면서도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된 걸까’, ‘연극계는 왜 이렇게 나이가 든 걸까’ 라는 생각들로 이어지더라.

: ‘젊다’는 의미는 대체 뭘까?

: 우리가 ‘젊음’을 추상적으로 여기며 20대와 결부시켜 생각하게 된 것 같다. 가령 축구에서는 만 25~28세를 선수의 전성기라 한다. 피겨에서는 10대 후반을 그렇게 본다. 얼마 전 현대무용가 양길호 씨를 인터뷰 했는데, 그분은 원래 연기를 하다가 군대 갔다 오고 나서 현대무용을 늦게 시작했다고 한다. 벨기에의 연 300회씩 공연을 하는 유명한 단체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씀하시더라. ‘그곳에서 안무가로 활동하는 나이의 피크는 40대 정도’라고 말이다. 정말 의외였다. 무용계에서는 40대 안무가를 젊게 볼 수 있다고 한다면, 연극계가 너무 올드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고정관념일 수도 있다. 연극계에서 2, 30대는 젊은 게 아니라 미숙한 것일 수 있다. 20대는 이것저것을 해보는 시기이고, 이 경험들이 쌓여서 앞으로 확 달려가는 게 30대 중후반인 것 같다. 40대에는 자기 작품세계를 만들며, 그 뒤로는 쭉 그 관점으로 자기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것 아닐까. 이게 기존 연극계가 생각하는 연극인들의 바이오리듬인 것 같다.

: 14세기 제아미(世阿弥)라는 사람이 일본 전통공연 ‘노’에 대한 연기술을 집필해 책을 만들었는데, 그 책에서도 스텔라 씨가 말한 것처럼 ‘바이오리듬’이 언급된다. 거기서는 배우가 무대 위에서 연기 잘 하는 것을 ‘꽃’에 비유한다. 배우가 꽃이 활짝 피는 시기를 4, 50대라고 하더라. 그러나 젊은 시기에도 꽃이 우연히 필 수 있다고도 말한다. 젊은 사람은 계속 수련해 나가야하며, 정말 활짝 꽃이 피는 시기는 수련이 다 된 상태에서 40대에 한 번 피울 수 있다는 것이다. 수련을 잘 하면 꽃을 피울 수 있지만, 못 피우는 사람도 있다고도 하더라.

: 그럼 그 시기를 완숙의 정도에 빗대어 본다면, 그것에 맞는 단어를 쓰면 되지 않을까? 왜 굳이 ‘젊은’이라는 표현을 쓰는지, 나는 그게 이해가 안 간다. ‘젊음’이나 ‘신인’이라고 하지 말고 그냥 ‘연출가상’을 주면 되는 것 아닌가? 왜 굳이 ‘젊은 연출가’라는 말을 쓰는지 잘 모르겠다.

‘젊음’이란 무엇인가?

: 돌아봐야 할 것은 ‘실제 젊은 사람들이 연극계에 없는가?’이다. 정말 없다면, 지금 신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젊다고 부르는 것에 있어서 큰 혼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젊은 사람들이 아예 없지 않다는 점이다. 연극을 하는 젊은 사람들은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데, 이 사람들을 아예 하나의 존재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하나? 3, 40대가 젊은 연극을 한다고 보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

: 사회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대중가요 같은 경우에는 훨씬 어린 친구들도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가령 아이유(25세)나 헤이즈(27세), 지코(26세) 등 많은 젊은 가수들은 자신만의 작업을 이어가며, 대중들로부터 그리고 업계로부터 아티스트로 인정받는다. 그 연령대의 아티스트들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을 인정하며 좋아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유독 연극계에서는 20대 예술가들이 뭔가를 시도할 수 있는 발판이 전혀 없고, 만약에 시도 했을 때에도 그것을 지나가는 과정 중의 일부로 보는 것 같다. 해보다가 힘들면 곧 떠날 사람으로 치부하는 것이 큰 문제인 듯하다.

: 순수예술 전반에서 한 사람이 한 분야에서 오랜 기간 동안 활동하면 그 분야의 권위자로 인정해주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 그럼 우린 젊은가? 우리도 사실 ‘젊음’ 이라는 이름으로 모였는데…

: 우리가 이번에 이 사업을 시작할 때 다양한 곳에서 ‘젊음이 뭐냐. 너희가 보여줄 수 있는 젊음은 무엇이냐’, ‘젊은 비평가는 뭐가 다르냐’라는 질문을 굉장히 많이 받았다. 그때 ‘우리도 알고 싶다. 이번 활동을 통해 그 답을 찾고 싶다’고 답했던 기억이 있다. 확실한 건 나이만으로 ‘젊은 비평가’라 말하는 건 아닌 것 같다.

: ‘젊다’와 ‘늙다’는 상대적인 것이다. 행복마을 청년 회장님 연세가 62세이다. 해당 집단이 얼마나 권위적인지에 따라 젊음의 기준은 다르다. 연극계는 정치판만큼이나 나이 기준이 높게 측정되어 있는 것 같다. 40대이면 젊은 정치인이듯이 연극계에서도 40대면 젊은 연극인이다. 이들이 연극판을 주도하고 있다 보니 젊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것 아닐까. 이들이 권력을 위에서 쥐고 있기 때문에.

: 각 연령에 맞게, 그리고 경력이나 연륜에 맞게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그들도 오랜 시간 동안 얼마나 힘들었겠나. 그 과정에서 경험한 시각들이 아직까지 남아있을 것이다. 그들도 그들대로 그들만의 동시대를 보여줘야 한다.

: ‘좌파 정권이라는 말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좌파’와 ‘정권’은 엮이면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모든 정권은 좌파일 수 없다. ‘올드한 연극인’이라는 말도 이것과 비슷한 것 같다. 젊어야 하는 게 연극이고 예술인데, ‘올드한 연극’이라는 건 이미 그 가치를 잃은 게 아닐까.

: 나는 기존의 연극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다 늙었고, 적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년의 기성 연극인들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기에, 그들이 많은 파이를 가지고 있기에 우리가 이를 지적하는 것이다. 적은 파이 안에 아직 존재하고 있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지분을 가질 수 있도록, 공평한 지분 배분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해야 보다 이상적이고 젊은 연극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 그런데 노년의 기성 연극인들만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노년의 기성 연극인들만 있는 것은 아닐까? 가령 여러 연극제를 보면 대부분 30대 중후반 더 나아가서는 40대, 50대 창작자들이 주를 이루고 있고, 그 안에서 20대 창작자를 찾기가 매우 힘들다. 연극계의 주요 협회들도 구성원들의 연령대를 보면 대다수가 40대 이상이다. 우리 연극계가 점점 고령화 사회의 축소판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젊은 연극인의 수는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연배 있는 분들만 계속 남게 되는 것 같다.

‘젊은’ 창작자와 ‘젊은’ 비평가

: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젊은 창작자가 해야 하는 일은 뭘까?

: 현재 젊은 창작자들의 모습을 보면 기존의 연극계를 답습하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 그들의 작품에서 이전과 달리 변화하려는 움직임을 감지하기 어렵다. 젊은 창작자들의 공연을 보러 갔을 때 기대와 달리 실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많은 젊은 연극인들이 ‘연극계가 늙었다’, ‘동시대의 감각을 따라가지 못 한다’고 인식하고는 있지만, 그 해결책으로서 자신의 것을 찾아가려는 노력을 보인다기 보다 기존의 연극인들, 그들의 ‘선생님’에게 배운 모습을 재생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젊은 창작자들의 작업이라 해도 재미있지 않고, 고루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생기는 듯하다.

: 그래도 30대 연극인들은 자신만의 작업을 찾아가기 위한 시도를 많이 하고 있지 않나? 다르게 시도하려는 용기나 패기 말이다. 30대가 되면서 여유가 생겨 도전할 수 있는 것 같다. 20대들은 그런 시도를 꿈꾸지도 못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젊은 창작자들의 연극에서 파격을 찾기 힘들다. ‘젊다’는 것은 동시대 이슈에 얼마나 민감하게, 기민하게 반응하는가의 문제인 것 같은데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 젊은 시각의 작품은 존재할 수 있어도, 젊은 예술가가 따로 존재할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든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연극을 시작해 색다른 시각을 보여줄 수 있고, 연극 경험이 많은 사람도 동시대 이슈를 그 어떤 어린 예술가들보다 과감한 시각으로 보여줄 수 있다. 나이나 경험 등을 기준으로 내세워 사람을 ‘젊음’과 그렇지 않음을 나누려다 보면, 결국 분리의 굴레에 빠질 수밖에 없지 않나. 과거의 영광을 계속 누리려 하지 않는 것, 즉 치열하게 현재를 얘기하며, 기존에 말해지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하는 것이 ‘젊음’의 기준이 되어야 하지 않나?

: 그럼 연극계에서 젊은 비평가의 역할은 뭘까?

: 시대의 감수성을 예민하게 읽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기성 비평가들도 그런 역할을 하고 있지만 같은 사안에 대하여 세대 별로 입장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기에 그들이 느끼는 문제의식과 20대인 내가 느끼는 문제의식은 분명히 다를 것이라고 본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더라도 그 안에서 각 세대 별로 향유하고 있는 문화나 공유하고 있는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가령 젠더 이슈에 관하여 그들이 감각하는 정도와 내가 감각하는 정도는 분명히 다를 것이며, 청년문제에 있어서도 내 나이 또래의 친구들이 체감하는 부담감과 현실감은 윗세대에서 바라보는 시각과는 매우 다를 것이다. 문제의식 뿐 아니라 예술의 형식적 측면에 있어서도 1인 미디어 채널, SNS 라이브방송 등 다변화하는 매체 환경에서 연극이 어떻게 자생할 수 있고 존립할 수 있는지, 또한 연극이 그것들과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들은 우리 세대의 연극인들이 주체가 되어 해야 하는 일들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느끼는, 내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시각을 바탕으로 연극을 읽고, 그것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젊은 비평가가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만 하는 일들 아닐까 싶다.

: 젊은 비평가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거창한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스스로 젊은 비평가라고 칭할 수 있는 지도 확신이 서지 않을 뿐더러, 젊은 비평가가 무엇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지 않나? 다만, 비평가적 역할을 하고자 모인 (젊다면 젊을 수 있는) 우리가, 그동안은 작품에 대해 발화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음을 자각하고 그 장을 스스로 마련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실제로 예술계는 ‘권위 없는 이’들의 작품평을 배척하며 스스로 고립해오지 않았나. 나는 자신만의 비평적 세계관을 만들든, 비평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든, 훈련과 경험의 기회조차 누릴 수 없었던 우리가 이곳 ‘PIL-ZINE’에서 마음껏 연극을 보고 글을 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