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에 학술팀이 사라졌다

: 과거 몇몇 극장에는 ‘드라마투르그’ 역할을 하는 인력이 있었다. 국립극단에는 학술팀이었고, 남산예술센터는 극장 드라마투르그가 있었다. 국립극단 학술팀은 관객을 대상으로 한 연극 강의와 인문학강의를 진행했고, 연극인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강의도 운영했다. 그 밖에 아카이빙의 목적으로 하는 리허설 북, 프로그램 북 등을 전담해서 제작했었다. 그런데 국립극단 학술팀은 2014년에 김윤철 예술감독 체제로 바뀌면서 그 역할과 규모가 대폭 축소되었고, 남산의 극장 드라마투르그 제도는 2012년에 처음 시작한 도입한 후, 2016년에 폐지되었다. 4년 만에 없어진 것인데, 당시 드라마투르그 역할이 필요 없다고 했다고 하더라. 극장이나 극단에서 극장 내 비평가의 역할을 하는 학술팀, 극장 드라마투르그가 사라지는 이 현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해보자.

: 그건 학술팀이나 극장 드라마투르그에 들어갈 예산을 다른 곳으로 뺐다는 의미 아닐까? 비평 작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 예산이 적어져서 라고 가정한다면, 현재 극장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이 학술팀을 운영하거나 극장 상주 드라마투르그를 둬서 작품마다 비평 작업을 돌리는 것보다 작품 하나 더 올리는 게 낫다고 판단을 하여 제작 및 마케팅 쪽으로 예산을 더 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과연 옳은 것일까? 하나의 작품을 올리더라도 이것에 대해서 ‘이 작품이 어떤 이야기를 했고, 어떤 영향을 주었고’ 하는 되돌아보는 시간 없이 계속 찍어서 올려내는 것에만 급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 프로덕션 드라마투르그이든 극장 드라마투르그이든, 그 역할이 관객과 작품을 연결해주는 것이라면 과거 존재했던 국립극단 학술팀이 그 역할을 잘 수행했다고 생각한다. 국립극단에 학술팀이 있었을 때 기발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일반관객과 연극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강의, 연극 강의를 꾸준히 했는데 ‘월요일 오후 다섯 시’ 강의에서는 매번 명사를 초청했었다. 예컨대, 도올 김용옥, 진중권, 강신주, 심광현 등등 주제도 다양했었다. 철학, 사회학, 미학, 연극학 등등. 관객들은 양질의 강좌를 들으러 국립극단에 방문했다가, 극장을 보게 되고 극장 프로그램을 알게 되고 공연도 보러가게 되고 그런 선순환의 역할을 했던 것 같다.

: 지금 되돌아보면 학술팀도 적극적인 홍보나 언론 대응이 필요했던 것 같다. 학술팀의 존재 증명을 위해 이곳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명확히 보여주었거나, 그 역할에 따른 성과도 제대로 보여줄 수 있었다면, 그리고 그것이 국립극단 내부 관계자들뿐 아니라 많은 관객들에게도 지지를 얻고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축소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공연 창작팀이 공신력 있고 믿을 만한 피드백으로 평론가나 언론에 많이 의지를 하며, 관객들의 평은 몇 개나 달렸는지 그 관객평 ‘수’를 신경 쓰는 것 같다. 사실상 국립극단은 꽤 많은 공연의 경우, 개막마다 프레스콜을 화려하게 하는데 학술팀의 행사는 국립극단 자체에서도 홍보, 마케팅의 주력 대상으로 삼지 않아왔다.

예술감독따라 바뀌는 극장 컨셉, 단단한 뿌리가 필요한 지금

: 예술경영이나 공연기획 관련 책을 보면, 공연 기획자나 예술경영자의 역할이 관객과 극장 혹은 예술작품을 연결하는 것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비평가의 역할도 관객과 프로덕션을 이어주는 것이다. 비평가와 기획자의 위치가 겹치는데, 여기서 기획자가 하드웨어적인 행정적 업무를 담당하는 것이라면, 비평가는 소프트웨어적으로 인문학‧미학적 역할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공극장이든 사적 극단‧극장이든 간에 이 두 가지는 동떨어져 생각할 수 없고 적절히 융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은 행정을 처리하는 기획팀 밖에는 없다. 소프트웨어를 책임질 비평가는 이런 극장에서의 역할을 상정하지 않고 단순히 공연 보고 비평문을 쓰는 게 역할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연극은 일반 시민들도 즐길 수 있어야 하는데, 일반 사람들은 연극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으니 누군가가 징검다리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 관객과의 가교 역할과 함께 극장의 컨셉을 잡아줄 수 있는 역할도 비평가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나라 극장들을 보면 명확한 컨셉이 있다기보다 다 똑같은 것 같다. 국립극단, 세종문화회관, 예술의전당 모두 ‘시민과 함께하는’ 식의 컨셉들만 내세우고 있다. 구체적인 목표는 없고 너무 광범위하고 큰 목표만 잡고 있는 것이다.

: 공공극장은 그 특성상 특정계층만 타겟팅 할 수 없기에 다들 대상이나 목표를 광범위하게 잡은 것은 아닐까?

: 코메디 프랑세즈(Comédie-Française)도 프랑스에서 보수적이고 고전적인 작품을 위주로 하고, 오데옹(Théâre de l’Odéon)에선 같은 작품도 진보적으로 하고, 독일에선 모 극장의 예술감독이 바뀌었는데 관객들이 나서서 반대 시위를 한단다. 어느 극장을 떠올리면 명확한 컨셉이 생각나고, 그를 관객들이 기대를 한다는 게 매력적이지 않나. 우리나라 극장들은 각 극장마다의 컨셉이라고 하기에는 모호한 것을 내세운다. 과연 일관적인 컨셉을 가지고 공연을 올리고 프로그램을 짜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 우리나라 국공립 극장들의 문제는 극장장이 바뀔 때마다 극장이 추구하는 연극적 미학들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단체의 예술감독이 바뀔 때마다 공연이 천차만별해지니, 해당 단체가 전통적으로 추구할 연극성이나 미학을 구축할 수가 없다. 얼마 전, 국립극단도 예술감독이 바뀌었으니 분위기가 다시 변할 것이다. 극단이나 극장에서 드라마투르그나 비평팀이 있으면, 이곳만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바뀌지 않을 고유의 컨셉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예술감독이 누구로 오든, 크고 작은 실험은 있겠지만 해당 단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정체성은 훼손할 수 없게끔 말이다. 그런데 국내 연극계는 그런 것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다.

: 어떤 예술감독이나 극장장이 오든, 그 사람만의 색깔로 극장 전체가 바뀌는 것을 지양하려면, 비평가나 드라마투르그가 존재하며 그걸 체계적으로 지적하고 모니터링하는 일이 필요할 것 같다. 그래서 주변 지인들과 얘기가 나온 게 ‘정도전 시스템’이었다(웃음). 어떤 또라이 같은 왕이 와도, 제대로 운영하고 감시하는 시스템을 둬야한다는 것이다.

: 나의 경우 ‘비평가가 과연 내부에 있는 게 바람직한가?’ 싶다. 비평가가 외주 형식으로, 혹은 외부 시민 모니터링단으로 존재해야 모니터링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들이 극장 내부에 존재하는 게 가능할까? 비평가가 외부에 존재하며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부 평가보다 외부 평가로, 전문적으로 평가를 해야 객관성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극장 드라마투르그의 존재는 극장이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한 명의 극장 드라마투르그에게 의지하는 비중이 커지면 그게 과연 예술적으로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 스텔라가 지적한 시민 모니터링단은 이미 남산예술센터나 두산아트센터에서 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비평가가 극장이나 프로덕션 내부에 존재한다고 해서 객관성을 잃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프로덕션 내의 비평가 역할을 하는 이를 ‘프로덕션 드라마투르그’라고 하고, 완성된 공연에 대한 비평을 하고 글을 쓰는 사람을 ‘평론가’나 ‘비평가’라고 한다. 두 역할 모두 객관성을 중요시한다. 다만 내부에서 내부 상황을 알고 줄 수 있는 객관성이 따로 있고, 외부에서 줄 수 있는 객관성이 따로 있다. 극장도 마찬가지다. 외부 모니터링단도 필요하지만 극장 내부 인력들과 소통하면서 극장이 추구하는 방향과 목표가 잘 운영되고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자체 평가하는 역할도 필요한 것이다. 연출가, 배우, 작가들뿐만 아니라 극장의 대표나 예술감독, 기획자, 홍보마케팅팀 등등과 원활하게 소통을 할 수 있는 존재 말이다.

: 나는 창작 작업을 하면서 드라마투르그의 중요성을 매우 느끼고 있지만, 과연 극장에서도 극장 드라마투르그나 비평 작업에 대해서 필요로 하는지는 의문이다. 개별 프로덕션에 비추어 볼 때, 창작자들에게 드라마투르그는 필요하지만 거슬리는 존재였던 것 같다. 좋은 작품이 나오기 위해서는 좋은 드라마투르그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드라마투르그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래서 극장 역시 극장 드라마투르그나 학술팀의 비평 작업이 단기간에 유용한 가치를 내지 못한다고 느낀 게 아닐까 싶다.

10년째 반복되는 고민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 사실 우리가 하고 있는 이런 고민들은 예전부터 존재했다. 예전 연극비평 잡지를 보니 10년 전에도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문제가 계속 반복되고, 고쳐지지 않고 있는 건데, 오늘 나눈 ‘비평가의 역할’이라는 이야기가 원론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알겠는데 대안이 나오지 않는다. 왜냐면 현실은 전혀 비평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창작자들은 피드백을 달라고 하지만 비평이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지 관심이 없다. 실제로 비평을 가지고 관객들이 2차, 3차 이야기를 하고 있나 하는 의문도 든다. 물론 오늘날 연극계에서 굉장히 필요하고 중요한 것으로서, 창작에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라지만, 해결점이 전혀 보이지 않는데 ‘극장에서 학술팀이나 비평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게 약간 반복되는 이야기처럼 들려서 무기력했다.

: 10년 전에 이런 고민들이 있었음에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지금까지 같은 문제로써 반복되고 있는 것은 그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가 앞서 논의해 온 극장 드라마투르그의 역할이나 국립극단에서 학술팀의 역할이 설득력을 갖지 못한 것은, 비평가들이 극장과 국공립 극단에서 비평 활동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업계에 증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평가의 역할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각각의 공연을 보며 리뷰를 써주는 것에 그치는 것으로 좁게 형성되어 있는 것 아닐까?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비평가가 등장하여 스스로의 가치 증명을 해낸다면 앞선 문제들도 길이 보이지 않을까 싶다.

: 기존 비평가들은 대부분 본업이 따로 있고 부업으로 비평을 하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수동적으로, 관습적으로 비평이 전개되고 있는 것 아닐까. 전업 비평가가 생긴다면 생계의 문제 때문이라도 비평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부단히 애쓸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선례로 몇 사람이 잘됐다면, 다른 비평가들도 자극을 받으며 각기 자신들의 영역을 넓힐 수 있지 않았을까.

: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가 말한 범위는 연극인들이 자주 찾는 극장이나 극단이었는데, 사실 극장 드라마투르그가 절실하게 필요한 곳은 지역 극장들인 것 같다. 관객들은 양질의 공연 문화를 향유하고 싶어 하는데, 대부분의 지역 극장들은 행정 인력밖에 없어서 대관 사업을 위주로 한다. 대관 공연들도 서울에서 히트한 공연들의 재공연이지, 시민 관객들의 욕구가 반영된 공연은 아닌 것 같다. 현재 지역 극장은 성과주의로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인문학적 베이스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지역 극장은 점점 힘을 잃어가고 특색도 없어지고, 지역 관객들은 질 좋은 공연을 보기 위해서는 서울로 올라온다.

: 좋은 지적이다. 비평가의 활동 영역을 단순히 역할적 팽창수준에서만 찾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층위에서 그 대안을 고려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우리는 지금까지 서울 중심부에서만, 그리고 지난 2회 필진수다회(〈연극과 돈, 내겐 너무 먼 당신〉편)에서 지적했던 연극인들이 말하는 연극계 안에서만 찾고 있는 것 같다. 그동안 우리가 생각해보지 않았던 영역에서도 비평가를 필요로 하는 또 다른 파이가 존재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