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포르노>, <인간동물원 초>, <파란 나라> 등…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의 ‘폭력’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는 연극들로 주목 받는 극단 신세계의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의 포스터나 리플렛을 보면 심심찮게 보이는 이름이 있다. ‘드라마터그 김연재’. 아마 몇몇 사람들은 ‘드라마터그’라는 생소한 단어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을지 모른다. ‘드라마터그가 도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드라마터그란 역할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드라마트루기(Dramaturgie)란 용어가 무엇인지를 살펴봄이 좋겠다. 드라마트루기의 어원은 ‘각본의 상연’을 뜻하는 그리스어인 드라마투르기아(dramaturgia)로서 원래는 희곡론·희곡작법·극작술·연극술을 뜻하는 것이나 일반적으로 연극이론, 혹은 희곡을 공연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이때 드라마투르기는 희곡작품 내에서 작동하는 극적 구조뿐만 아니라, 배우의 연기, 장르, 의상, 무대장치, 조명 등 제작의 요소까지 포함하는 총체적 개념이다. 드라마투르기는 각각의 희곡에서 나타나는 시대 및 양식상의 특징들을 드러내고, 이러한 연극적 구조가 한 작품 안에서 다른 요소들과 어떻게 결합하여 의미를 생산하는지 보여준다. 따라서 희곡 극작가, 혹은 공연의 드라마투르기를 분석하는 일은 예술적이고 통일적인 공연을 만드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날, 드라마투르기에 종사하는 사람을 ‘드라마터그’(dramaturg)라고 부른다. 이들은 연극의 역사, 이론, 실제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연출가, 디자이너, 극작가, 배우 등이 자신의 의도를 작품을 통해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다. 드라마터그는 극작가의 열정이나 연출가의 비전을 인지하고 있는 일종의 예술적 컨설턴트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고전이나 새로운 극작가의 작품을 읽고 공연할 작품을 추천하고, 필요에 따라 문학적 충고 및 대본 각색에 관여하며, 연출가에게 충분한 연구 및 조사를 제공하여 작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이들은 레퍼토리의 선정과 해석, 프로그램 노트, 포스터, 강연회 조직, 홍보 등에도 관여함으로써 총체적인 연극적 경험을 고양시킨다.

이렇듯 드라마터그는 아주 많은 일들을 한다. 게다가 다양한 공연들의 필요와 요구에 맞추어 다양한 방법으로 서포트하는 것이 이들에게 주어진 임무이다 보니, 하는 일도 공연마다 달라지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현재 공연예술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드라마터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면 어떨까. 이들이 들려주는 생생한 작업 속에서, 드라마터그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안고, 드라마터그 김연재를 만나보았다.

김연재 Profile

이름 : 김연재

직업 : 드라마터그 및 연출

드라마터그 첫 경험 : 2012년 < 북 치고 장구 치고 아가멤논>(김광림 작·연출)

가장 애정하는 작품 : 2015년 <그러므로 포르노>

가장 좋아하는 연극 : 이오네스코의 부조리극

드라마터그로서의 예술관 : 이론과 실제를 접목시키는 드라마터그

드라마터그가 되기까지

이태원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김연재는 자신을 “작, 연출, 드라마터그 등등, 연극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렇다면 연극을 하는 일에 ‘드라마터그’는 무엇을 보태는 사람일까. 김연재에게 드라마터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물었다.

간단히 말하면 내부비평가라고 얘기할 있어요. 공연 전체가 동시대성과 예술성을 가지고 하나의 통일된 작품을 만드는지 옆에서 지켜보고, 끊임없이 피드백을 주는 사람이 바로 드라마터그입니다.

드라마터그 김연재 역시 처음부터 드라마터그라는 존재를 알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학교 수업을 들으면서 드라마터그란 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2012년 <북 치고 장구 치고 아가멤논>(김광림 작·연출)이라는 학교 공연에 보조 드라마터그로 참여했다. 보조 드라마터그로 참여하는 동안 메인 드라마터그셨던 박춘근 선생님과 드라마터지 수업에서 주어지는 과제를 수행하며 ‘아, 드라마터그는 이런 사람이구나’를 경험으로 배웠다.

그 다음 작품은 <정의의 사람들>(알베르 까뮈 작, 김동현 연출)이었다. 치열하게 작품과 장면 분석을 했고, 관련된 자료들을 능동적으로 찾아서 배우랑 얘기하는 과정이 즐거웠다. 김광림 연출가가 드라마터그에게 학술적인 자료나 강의를 주로 요구했다면, 김동현 연출가는 드라마터그가 배우들과 논쟁하길 바랐다. 그 다음으로 참여한 공연에서는 연출과 학생과 작업했다. 정확하게 무엇을 해달라는 요구는 없었지만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모든 것을 다 해야 했으니까. 그건 극단 신세계와의 작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드라마터그 김연재와 극단 신세계

김연재는 2014년, 당시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학생이었던 김수정 연출가가 연출한 작품 <말 잘 듣는 사람들>에서 드라마터그로 참여했다. 그리고 1년 후인 2015년, 김수정 연출가를 필두로 극단 신세계가 창단하면서 신세계의 굵직한 공연들에 드라마터그로 이름을 올려오고 있다. 드라마터그 김연재에게 극단 신세계에서 드라마터그로 참여할 때 각각의 작품마다 어떤 역할들을 했는지 물어보았다.

드라마터그 김연재가 제일 애정하는 작품은 2015년에 작업했던 공동창작극 <그러므로 포르노>이다. 거기서 김연재는 드라마터그로서 공연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일에 관여했다.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가기 전 단계인 프리-프로덕션 과정에서는 연출가와 함께 극단에서 스터디할 책을 선정했다. 그렇게 정해진 『포르노 이슈』, 『포르노는 없다』 등의 책으로 스터디를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공연 안에서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제를 선정했다.

공부한 것으로 배우들과 함께 장면을 만들고, 그 장면들로 대본을 구성하기도 했다. 그렇게 대본이 완성된 후에는 연습 과정에 참여하며 끊임없이 피드백을 주는 내부 비평가의 역할에 충실했다. 장면 흐름과 연기, 무대미술 등 전반적인 것들에 대해 피드백을 주었다. 리플렛에 들어가는 작품 소개를 쓰는 것도 드라마터그의 몫이었다. 공연이 올라간 뒤에는 매일 코멘트를 적고 연출가와 장면을 수정했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쉴 수 없었다. 공연의 전반적인 피드백과 함께 배우들, 스탭들과 함께 이 공연이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공동창작공연이어서 힘들긴 했어도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반면 <인간동물원초>와 <파란 나라>는 공동창작극이 아닌 대본이 있는 작품들이었다. 다만 <인간동물원초>는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고, <파란 나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차이가 있었다. 여기서는 드라마터그가 대본 작업을 할 필요가 없었다. 대신 작품이 동시대적으로 잘 맞닿아 있는지, 이야기의 개연성이 잘 연결되고 있는지를 살폈다. 캐릭터에도 주안점을 두었다. <인간동물원초>의 경우, 프리-프로덕션 과정에서 인간 군상을 점검하는 작업을 거쳤다. 권력을 가진 사람, 아부를 잘 떠는 사람 등 우리 사회 안에 있는 여러 인간 군상을 파악한 다음, 그 권력과 힘들이 배분되는 방식을 연극에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를 고민했다. 폭력에 대한 경험들을 배우들과 나누기도 했다. 배우들이 겪었던 폭력의 장면들, 실제 있었던 끔찍한 일들이 <인간동물원초>의 무대가 되는 감옥 안에서 이뤄지도록 장면을 계속 수정해 나갔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파란 나라>의 경우에는 실제 있었던 사건에 대한 정확한 정보 파악이 우선이었다. 관련 기사와 자료를 수집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인물들이 실제로 무슨 일을 했는지를 살폈다. 또한 작품이 사회심리학의 군중심리를 많이 다루고 있었던 만큼, 그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이론을 보완하기도 했다. 실화를 연극의 형식으로 옮겨 오면서 다른 시공간에서 벌어졌던 실화가 대한민국 경기도의 고등학교로 잘 옮겨졌는지 확인하는 것도 드라마터그의 몫이었다. 이를 위해 실제 청소년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배우의 사촌 동생들을 만나보거나, 고등학생들을 만나 학교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실제 고등학교 선생님들을 모셔와 선생님의 입장을 들어보기도 했다. 그 이후에는 다시 계속되는 피드백이 이어졌다. 더 좋은 공연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며 아픈 진실도 솔직히 말하려 노력했다

드라마터그로 산다는

드라마터그는 냉철해져야 한다. 공연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연출가의 지시가 명확한지, 또 그 의도가 장면 구석구석 묻어있는지를 보아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함께 정신없이 작품을 만들다보면 어느 순간 객관성을 잃는다. 창작과 비평 사이에서 균형 잡기가 어려워진다. 그럴 때마다 드라마터그가 참 힘든 일이라고 느낀다. 사람들이 드라마터그가 뭐냐고 물어올 때마다 무어라 대답하기도 참 어렵다. 모든 것을 다 하지만, 무엇을 한다고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려운 까닭이다. 설명하기 어려운 만큼, 위치도 애매하다. 드라마터그는 배우나 무대미술가처럼 없으면 안 되는 역할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연출가가 드라마터그의 필요를 인정해 줘야만 꾸준히 작업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앞으로 창작자들은 점점 드라마터그를 필요로 거예요. 사회가 너무 복잡해지고, 새로운 이론들도 계속 생겨나는데 연출가는 이런 흐름을 감당할 수가 없거든요. 공연의 요소들을 하나로 통합해주고, 창작자의 연출 콘셉트가 동시대와 맞아떨어지는지 확인시켜줄 사람을 계속 필요로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드라마터그에 대한 인식이 확장되고, 대우가 개선될 필요가 있어요.

어려운 점도 많지만, 치밀하게 장면을 분석할 때나 함께 논쟁하는 과정이 즐겁다. 희곡을 읽으며 장면 별로 목표를 찾고, 인물별로 세세하게 분석해 나갈 때마다 쪼개는 쾌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민한 것들이 치열한 토론 끝에 공연물로 나오는 것을 볼 때 뿌듯함을 느낀다. 이처럼 이론적인 것이 실제가 되어가는 과정을 즐거워하고, 냉철한 피드백을 통해 작품이 좋아지는 것을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드라마터그를 즐겁게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연출가한테 흔들리지 않고, 냉철하게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뚝심도 갖춰야 한다. 연출가가 듣고 싶어 하는 얘기가 뭔지 알지만,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미움 받을 용기’를 가진 사람. 그가 바로 드라마터그의 자질을 가진 사람이다.

연극은 어쨌든 설득의 과정을 거쳐야 하잖아요. 그렇게 논쟁을 하다보면 생각이 많이 깨지고, 세계를 보게 돼요. 새로운 , 새로운 세계, 새로운 생각의 방법을 알아간다는 것이 즐거워요. 논쟁의 과정에서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가 드라마터그의 중요한 자질 하나라고 생각해요. 고집이 아니라 확신이 있다면, 아무리 연출이 그렇다고 해도 나는 끝까지 아니라고 있는, 미움 받을 용기말이에요.

앞으로는 드라마터그로서 텍스트를 치열하게 분석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 탄탄한 텍스트를 분석해 세계를 명쾌하게 풀어내는 그런 쾌감이 있는 공연도 좋고, 명쾌하게 답이 나오지 않는 부조리극도 좋다. 사람들이 대체 이 고난과 역경의 사회에서 왜 사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러한 고민을 담아 김연재 작·연출로 <살기로운 생활>(8월 24일 ~ 9월 3일, 알과핵소극장)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최근에 이슈로 떠오른 여러 ‘혐오’의 모습들을 다룬 작품이었다. 연출가로서의 경험은 드라마터그로 참여할 때 연출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고, 드라마터그의 경험 역시 연출가로서 공연을 완성도 있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각각의 경험이 연극인 김연재를 튼튼하게 세워가는 기둥이 되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드라마터그 꿈나무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고 했더니, ‘왜 하려는 거냐’고 묻고 싶다는 질문이 되돌아 왔다. 그래, 드라마터그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인터뷰 중 가끔씩 이렇게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져 왔다. “왜 하고 싶어요?” 그건 단지 드라마터그 꿈나무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처럼 들렸다.

“지금 그거, 왜 해요? 당신은 왜 살고 있나요?”

(사진 제공 – 극단 신세계)